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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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기도회 (3) - 우행시(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느헤미야강
  • 2015-11-20
  • 943 회
  • 1 건
20151119(목) 행복축제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 ③
 
행조(행복의 조건)
우행시(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마13: 44~46
 
오늘 말씀엔 천국으로 비유된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밭 속에 파묻혀져 있는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가져야 되겠다는 열망과 목표가 생겼습니다.
바로 그 목표가 이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 그 사람을 인도했다는 얘깁니다.
 
또 하나는 진주 상인 얘기인데, 어떤 좋은 진주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엔 진주가 많이 있지만 이 사람이 구한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진주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 다녔는데, 어느 날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든 저 진주를 손에 넣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목표가 생겼고,
바로 그게 그 사람으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복권을 샀다가 1등에 당첨이 됐습니다.
아직 찾지는 않았지만 그 복권이 여러분의 손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얼마나 신날까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마 잠도 안 오고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겠지요?
 
지금 이 농부와 진주 장사가 그렇습니다.
자기는 땅한 뙈기 없지만, 또는 매일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지만,
이제 가장 값진 것들을 가질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다가 새 목표가 생기니까 너무나 행복한 겁니다.
얼마나 설레고 들뜨고 벅차겠습니까?
 
이 이야기가 실은 우리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다가 그 분을 만나고,
그 분으로 인해서 전에 몰랐던 영원한 천국을 발견하고,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기쁨을 발견했을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마치 오늘의 주인공들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환희와 감격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전에 없던 목표가 생겨서,
정말 매 순간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첫째 행복의 조건은, 행복한 시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가질때입니다.
 
오늘 본문 44절을 유심히 보세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그 다음 보세요. “기뻐하여 돌아가서… ”
이 사람이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라는 겁니까?
실제로 전 재산을 다 털어 그 밭을 산 때였습니까?
그게 아니라 그 삶에 목표가 생긴 그 순간부터가 기쁨이고,
그때부터 행복이 찾아 오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더 없는 행복인 것입니다.
그 분 때문에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고 삶에 목표가 생겼다면
그것 때문에 우리는 행복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긍극적인 목표는 천국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고상한 목표를 세우고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그 발걸음 자체가 우리에겐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어떤 처지였습니까?
죄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아니었습니까?
그런 우리를 피 값으로 사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로 말미암은 천국을 소유한 것입니다.
나 같은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상한 인격을 덧입고 새 사람이 되었다면,
그 천국으로 매일 한 걸음씩 나가는 삶 속에서, 비록 이 땅에서 모자란 게 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게 있더라도 우리는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목표가 세워졌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분 안에서 그 분을 따르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때문에 기뻐하고, 예수 때문에 일하고, 예수 때문에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어떤 현장에 있더라도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게 행복의 조건 0 순위입니다. 그때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세우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 행복의 조건은, 행복한 시간은 대가 지불할때입니다.
 
진리를 발견했습니까? 그리고 목표가 생겼습니까?
그러면 거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오늘 농부나 진주 상인이나 똑같이 한 일이 있습니다.
44절 끝에 ‘기뻐하여 돌아가서’ 그 다음에 어떻게 했다고 했을까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46절 끝에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그랬습니다.
자기 소유 중에서 일부를 판 게 아니라 다 팔았다는 겁니다.
그 보화를 얻기 위해, 그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 있는 전 재산을 다 털었습니다.
 
누구든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을 위해 누구나 다 대가를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마16:24)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주님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순전히 우리를 생각하셔서 그런 요구를 하신 겁니다.
 
우리 교회가 캐나다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라 심방이나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시듯 성도님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교회가 그냥 목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잠자기 전까지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서재 아니면 도서관에 머물러 있습니다.
멀리 나가거나 정말 많이 아프지 않은 이상 새벽기도 인도를 거른 적이 없고,
아무리 몇 명 모이지 않는 새벽기도라도 원고를 쓰지 않고 강대상에 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이런 것 모두 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교회가 쑥쑥 성장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치룰 대가를 다 치러도 행복의 길이, 성공의 길이 빨리 오는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하물며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조차 치루지 않는다면,
거기에 무슨 성공이나 행복이 올 일이 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셨습니다.
‘무리’와 ‘제자’입니다.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누신 기준이 뭘까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질 사람은 제자요,
대가 지불이 없는 사람은 그냥 무리일 뿐이란 뜻입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도 주님의 그 분류방법에 따라 무리로 분류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제자가 되고 거기서 행복을 찾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익명으로 있으면 안됩니다.
 
지금 많은 대형 교회가 회개할 게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들을 추구하는 이유가 익명성때문입니다.
교인들을 숨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꼭꼭 숨을 수 있도록 은신처 삼게 하는
수단과 도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질투해서가 아닙니다.
오랫 동안 안 나와도 아는 사람 없고, 모처럼 나가도 반겨주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바에야는 교회를 좀 잘라서 십자가를 지게 하고 무리들을 제자로 만드는 게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강점이 바로 그런게 되어야 합니다.
작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고 더 이해하며 더 살가워야 합니다.
교회가 작다 보니까 숨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누구나 다 일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노는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다들 작은 십자가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겁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더라. 복 받는다더라”
그런 싸구려 복음은 사라져야 합니다.
 
대가 지불을 하지 않는 신앙은 오히려 축복이 아니라 장애가 됩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어느 날 선물로 주어진 이 구원을 감당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수도사가 여행을 하는 중에 보석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수도사는 보석을 자기 여행 가방에 아무렇게나 꾸려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한 동행자를 만나 여행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 그 두 사람은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자가 얼핏 보니 심장이 멎을 만큼 값진 보석이 수도사의 가방에서 빛나는 겁니다.
“장난 삼아 얘기하지요?”
“수도사가 그런 보석이 뭐 필요 있습니까? 그냥 저를 주시지요”
그랬더니 그 수도사가 무슨 하찮은 물건 내놓듯이 “그러시지요” 하면서
보석을 여행자 앞에 던지는 거였습니다. 그
리고 그 둘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며칠 뒤에 그 여행자가 수소문 끝에 수도사를 찾아 와서 보석을 내 놓으면서
묻는 말이 이랬습니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보석도 선뜻 내 놓을 수 있게 했습니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의 탐욕을 잠재우며,
무엇이 그 좋아 보이는 것들을 다 포기하도록 하는 것입니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그 행복의 근원입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님 때문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대답이 여러분 일생의 고백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행복 15-11-20
      정말 나는 예수님때문에 이전과 다른 목표, 꿈이 있는 사람인가?
      발견한 뒤 소유를 다 팔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분으로 여기는가?
      내 시간, 내 마음, 내 몸과 그리고 주신 것 하나하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