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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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사순절특새: 내적 외적 축복을 받는 비결(온유)

  • 느헤미야강
  •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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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사순절특별새벽기도회 / 하나님의 성품 (6)
내적,외적 축복을 받는 비결, 온유
마태복음 5:5
 
예수님의 많은 성품중 온유는 ‘나는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직접 말씀하신 것 중 하나입니다.
마태복음 11: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온유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면서, 다른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축복도 받게 되는 능력이 됩니다.
영적축복을 받으면서 삶의 축복을 받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내적, 외적인 축복을 받는 비결, 균형잡힌 축복의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온유가 무엇이길래 이런 균형잡힌 축복을 가져다 주는 걸까요?
 
첫째, 문자적, 사전적 의미로 ‘성격, 태도 따위가 온화하고 부드러움’의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의미의 온유를 사용한 곳이 30여 곳 내외 됩니다.
오늘 말씀은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함이 무엇인지 구약과 신약의 용어를 통해서 더 깊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구약성경: 히브리어 - 온유 / ‘아니’라는 단어. 이 말은 ‘아나우’에서 온 말
자기를 낮추다, 훈련하다.
온유한 사람이라는 말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니 겸손한 사람을 말합니다.
고난과 핍박이 와도 여호와의 도움을 바라며 자기를 훈련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본래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격하게 애굽사람을 쳐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좌우로 살펴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었지, 위를 살펴 하나님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모세를 온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거칠고 과격한 사람을 온유함으로 바꾸셔서 따듯한 준마로 바꾸셨습니다.
한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낮추시고, 훈련시키셨습니다. 힘이 있지만, 능력이 있지만 참을 줄 아는 사람, 절제할 줄 아는 사람, 낮아 질 줄 아는 사람으로 바꾸셨습니다.
 
3.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온유’는 ‘프라우스’(헬) 란 말입니다 : 야생마를 길들이는 말에 쓰여짐. 노련한 조련사가 야생마를 붙들고 훈련시켜 주인에게 길들여져 온순케 되어 주인이 이끄는데로 가는 것을 뜻합니다.
프라우스라는 말에는 ‘열을 떨어뜨리는 것’,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의 두가지 다 있습니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는데요, 바로 ‘힘 조절 능력’입니다. ‘절제된 힘’을 의미합니다.
야생마는 거칠기로 유명합니다. 거친대신 힘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문제는 길들여지지 않아 힘을 조절못하다는 것입니다. 그
러나 힘이 조절되면 엄청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절제된 힘입니다.
야생마를 준바로 만드는 힘이 온유입니다.
 
내 속에 의협심도 있고, 불의함을 참지 못하는 강함이 있으나,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와 성령님이 주인이 되셔서 화내야 할 때, 뒤집어 엎고 싶을때, 집어 던지고 싶을때, 성령님이 주인되어서 주셔서 내 마음을 콘트롤하게 만드는 것이 성경적인 온유입니다.
 
온유는 오직 성령이 함께 할때에라야만 가능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내 속에서 성령이 다스리고 있음을 붙잡을때만이 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온유한 성품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안에서 살려고 무시로 기도하고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창13:8~9절에는 롯은 눈에 보이는 멋진 땅을 차지했지만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땅을 다 차지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윗이 왕이 되어 결국은 남북이스라엘이 하나되는 통일을 이루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곳으로 나가는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삶이 바로 온유입니다.
창26;20-22에 이삭이 우물을 그냥 양보한 것이 아니에요. 힘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했기에 참고 나아간것입니다. 그게 온유입니다. 우물을 차지한다는 것은 그 땅을 차지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르호봇, 더 넓은 땅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온유한자가 땅을 차지하는 비결입니다.
싸워서 얻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온유함이 얻는 축복이었습니다.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더니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대에로다”(시76:8-9)
 
하나님 말씀앞에서 훈련되어지고 낮아져서 내게 준 힘과 능력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이웃에게는 따듯함으로 대하는 그런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유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온유했고 이삭이 온유함으로 땅을 복으로 받았습니다. 모세가 온유했습니다.
고난주간에 온유한 삶되겠다고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