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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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기도회(1) 야긴과 보아스(교회와 인생의 두 기둥)

  • 느헤미야강
  •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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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화) 행복축제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 ①
 
야긴과 보아스 (인생의 두 기둥)
대하3:15-17
 
 
모든 공동체나 모든 집단은 그 모임을 모임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정치를 하는 정당은 정권의 창출이고,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가정은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어디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을 지을때 가장 중요한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지성소입니다.
구약에서 보여주는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지성소였습니다.
그곳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동물의 희생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었으며
죽음과 희생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동물의 희생은 우리의 죽음과 희생을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 희생 때문에 백성들이 용서함 받아 살 수 있었던 곳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지성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지성소의 정신은 동일합니다.
동물희생이 곧 이스라엘백성의 죽음과 희생이었고 그 희생이 사람을 살게 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지성소가 담고 있는 정신입니다.
 
기독교 역사와 신앙의 핵심은 죽음과 희생을 통해서 살게된다는 역설에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을 때 우리와 우리의 교회는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의 죽음과 희생이 없을 때 교회와 우리는 참 생명을 잃어갈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누리는 이 풍성한 생명은
죽음과 희생이 치러진 지성소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주님의 성전 지성소에서
자신의 몸과 삶과 피를 흘려 제물로 삼았습니다.
 
우리교회 역시 짧은 역사속에서도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려움 고비마다 참아내고 눈물로 자신을 희생제물 삼으려 했던 성도님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희생시키는 제물이 되어 그 피로 교회를 살렸고,
그렇게 나를 죽이는 신앙으로 교회를 부둥켜안고 살려 왔던 것입니다.
 
구약시대 예루살렘성전에 담겨진 정신이 있습니다.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어했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냥 가만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하였습니다.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 그 대부분의 물자들은 다윗이 준비하여 놓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진 희생의 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희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훌륭하고 아름답게 건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과 희생은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솔로몬도 성전을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7년만에 건축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성전을 다 짓고 난 후에 성전의 앞에 기둥 둘을 세웠는데,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남쪽 기둥이 야긴이라 했고 또 북쪽에 세운 기둥을 보아스라 하였습니다.
야긴은 '그가 세우시리라'는 뜻이고, 보아스라는 말은 '하나님의 민첩한 능력' 이라는 말입니다.
즉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이 성전을 세우셨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과 솔로몬의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이라 하였을 것이고
또 다른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성전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의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누구보다 희생했고 헌신했지만 자신의 이름과 공적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 솔로몬의 믿음이
하나님 성전에 드려진 지성소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피를 흘려 죽여야 하는 희생 제물의 정신은 이렇게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나는 죽고 하나님만 드러내는 일로 이어진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이렇게 멋진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 예루실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보면 예루살렘은 원래 이스라엘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변두리 땅이었습니다.
적의 위협이 항상 있어왔고 전쟁이 난무하던, 인간적인 매력은 거의 없는 곳으로
당연히 그곳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곳입니다.
 
느혜미야서에 보면 제비를 뽑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이주시켰을 정도로
예루살렘은 매력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예루살렘은 처음에는 쓸모 없는 땅,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은 모든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중심이요,
전 세계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을 생각케 해 주는 상징적인 성읍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제일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세웠다고 해서 모든 성읍이 유명해지거나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은 세계에서 단위 면적 당 교회가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
또 세계에서 제일 큰 개신교 성전1, 2, 3위가 한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순히 예배당을 세웠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세계의 중심이 된 이유는
바로 성전에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을 세운 것 때문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희생이 있었음에도
그것은 드러냄없이 오직 능력의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그 정신 하나가
변두리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죽고 희생하는 삶이되어야 한다는
그 신앙이 예루살렘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대해 한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생명교회가 리치몬드힐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커지거나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영성을 이끌어 나가는 교회가 있게 마련인데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 성전, 이 교회의 지성소에서
모두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아낌없이 드릴 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의 제물이 되어 나의 나됨을 죽이고 피 흘리기를 힘쓸 때,
우리 새생명교회는 시대를 이끄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곳 리치몬드힐은 저 밑의 토론토이 비하면 꽤 먼 북족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직은 주변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자기 죽음과 희생으로 교회를 위해 무장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라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믿음의 기둥을 세울때
우리교회 역시 이 시대의 영적 예루살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시간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지 우리 교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문제를 바로 보고싶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의미했다면
신약시대의 성전은 바로 우리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는 너희의 몸이 성전 됨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의 길은 하나의 성전을 짓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 세웠던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우리의 삶에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그 성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주류,
그 중심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도 결국은 우리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그 중심에 들어가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든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입니다.
좋은 학교를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바램도,
또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시대의 주류로 이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하고픈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중심이 되게 해 주십니다.
 
우선 순위가 바뀐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인생의 성전을 지어갈 때 야긴과 보아스!
즉 능력의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끄는 주류가 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127:1-2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이 말씀에 대한 가장 멋지고 정확한 대답은 수24:14-15 에서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대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의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느헤미야강 15-11-18
      기도제목
      1. 우리교회에 야긴과 보아스 같은 신앙의 두 기둥이 성도님 한 분 한 분들이 될 수 있게 하소서
      2. 십자가 죽음과 희생의 담긴 지성소의 의미를 깨닫고 우리교회가 이 땅에 영적 예루살렘이 되게 하소서.
      3. 모든 성도님들의 삶속에 내 삶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세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류인생이 되게 하소서.
      4. 행복축제와 태신자 초청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게 하소서.
    • 은혜 15-11-18
      내인생의 두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세우는 삶이 되겠습니다.아멘
    • 코람데오 15-11-18
      교회 위치가 멀다  예배시간이 오후라 부흥하기 쉽지않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내가 죽고 주님만이 드러나고 내몸을 드려 헌신하게되면  모든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새생명교회를 이땅의 예루살렘성전삼아주실줄 믿습니다
      분명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이 나게될줄 믿습니다
    • 오직믿음 15-11-19
      교회도 개인도 희생의 밑바탕위에 두고
      오직 능력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시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