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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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기도회(2) 레아? vs 라헬?

  • 느헤미야강
  •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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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8(수) 행복축제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 ②
 
레아 vs 라헬
창29;31~35
 
오늘 함께 나눌 성경인물은 레아와 라헬입니다.
레아는 야곱의 첫째 부인이고 라헬은 두 번째 부인입니다.
라헬(레이첼)은 야곱이 사랑했던 부인이고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어서 성도님들이 잘 아는데 비해
레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읽어보면,
레아가 라헬보다 훨씬 더 은혜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 사랑받았던 여인이었음을 알게됩니다.
무엇보다 레아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다 보면
그녀는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29:17에, 레아의 모습이 나오는데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이게 다입니다.
눈이 나쁘다는 것 외에 설명할 게 없다는 겁니다.
반면에 그녀의 동생인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레아의 인생 = 은혜인생
 
어느날 야곱이 자기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항상 라헬에게만 마음을 줍니다.
라헬에게만 마음이 가있는게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는 예의만 지킵니다.
자존심상하고 마음상할 일입니다.
창29;18절을 보면 아버지한테 결혼 제안을 할 때 동생 라헬을 달라고 합니다.
창29:18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헬을 위해 7년 동안을 일하는 야곱을 보면서도 열등감과 괴로움이 있었을 겁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7년을 몇 일 같이 여기며 일했을까?
그러다가 7년이 다 됐습니다. 이제 라헬과 야곱이 결혼하게 되는데,
결혼식 전날 밤 아버지가 레아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라헬대신 신방에 들어가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레아야 레아야, 너도 너 자신을 알리라 믿는다. 거울을 봐서 알겠지만
 그 얼굴로는 시집 못 간다. 넌 덤으로 가야 해. 그러니 암말 말고 이 애비가 시키는 대로 해라”
 
야곱과 라헬이 결혼한 첫날 밤, 레아가 야곱의 침실로 들어갑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신혼 첫날밤을 사기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열등감에 여러 가지로 상처되었는데 동생 대신 들어가는 자기 처지가 얼마나 비참했을까요?
그렇게라도 사랑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더 비참한 건 그 다음 날 아침이었겁니다.
날이 새고 모든 게 확인되었을 때 일어났을 야곱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야곱의 놀난 표정이나, 나가라고 했든지, 자신이 뛰쳐 나갔든지 레아에게는 상처였을겁니다.
 
어쩌면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이런 식의 열등감이나 속상했던 일,
크고 작은 상처들, 소외 당하는 것 때문에 죽고 싶을 만큼
아파하고 신음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레아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 모두의 초상인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자기가 누군가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됐다는 사실일 겁니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정말 잘 치료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고, 신분을 상승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외되지 않으니까요.
 
여자로서 가장 큰 행복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건데,
야곱은 여전히 라헬에게만 마음을 줍니다.
그렇지만 혹시나 아들을 낳으면 사랑해주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첫 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짓습니다.
‘보라 아들이다’ 하는 뜻입니다.
둘째를 낳고 시므온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이젠 남편이 내게 오겠지…”
그런데도 남편은 관심이 없습니다.
셋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레위라고 짓습니다. ‘연합하다’란 뜻입니다.
“이젠 남편이 연합해 주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여전히 자기에게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세 번째 아들을 낳아 보았지만 역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넷째 유다를 낳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유다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하나님!” 그런 뜻입니다.
오늘 본문 35절,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지금까지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는데
이제 그 관심을 하나님 쪽으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레아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찬양은 우리 힘이 다 빠질 때에야 비로소 나온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열등감으로 찌들린 인생을 살았지만,
내 힘이 다 빠진 지금부터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인생으로 변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 녹아들어가게 되고,
그때부터 내 말투에, 삶에, 인격에 하나님의 마음이 배어 있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은혜 안에 사는 백성들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런 레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우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2. 라헬의 인생 = 은혜가 없는 인생
 
반면에 은혜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떨까요?
자기 힘만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맘에 안들면 핏대 올리며 살아 갑니다.
라헬이 그랬습니다.
언니는 아기를 펑펑 낳는데 자기는 못 낳으니까 억지를 부립니다.
창30:1~2절 보면 야곱에게 아이를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콱 죽어버릴거야 바가지에 투정과 억지를 부립니다.
라헬에게는 신앙적인 모습을 어디에서고 찾을 수 없습니다.
 
남편을 다그치다가 안 되니까 종을 대신 야곱에게 보내 자식을 낳게 합니다.
그래서 여종 빌하를 통해서 아들을 낳습니다.
이름을 지었는데 ‘단’이라고 짓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억울함을 푸심’ 이란 뜻입니다.
“’억울함을 푸심아’ ! 물 한 그릇 떠 온! 억울함을 푸심아! 소 젖 좀 짜거라! ”
애가 자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여종으로부터 또 그 다음 아들을 나았는데 이름을 납달리로 지었습니다.
‘경쟁하다’ 라는 뜻입니다. “흥! 이젠 2:4가 됐네,
정말 이제부터 해 볼만 해! 그래 경쟁해 보자!”
 
라헬은 단 한 번도 자기 힘을 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막내 베냐민을 낳고 죽지요.
베냐민이란 이름도 야곱이 지은 것입니다.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습니다.
‘슬픔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내가 너 낳다가 죽게 돼서 슬픈다는 말입니다.
 
라헬은 그녀의 삶으로 보나 아들 이름 짓는 것으로 보나
신앙적 기미가 전혀 없이 살다가 죽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모르고, 하나님 은혜 또한 뭔지도 모르고,
아무 이룬 것 없이 그냥 죽어 갔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레아와 라헬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은혜있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평소의 삶,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니엘 6:10절을 보니까,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절이 ‘전에 하던 대로’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왕이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했다,
그래서 사자 굴에 들어가서 승리했다 이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되기 위한 진짜 필요충분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전에 하던 대로 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평소대로의 삶이 있어야 하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평소의 삶이 없다면 다니엘 같은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평소의 삶,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게 은혜의 삶이라는 겁니다.
 
레아! 그녀의 인생에선 특별 난 게 없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시작하던때부터
평소에 하나님을 섬기고 일상을 성실하게 꾸려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다시 아들 잇사갈을 주시고 스불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복 주셨다, 내가 영원히 그곳에 거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녀는 평범한 삶 가운데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녀는 막벨라 굴에 묻힙니다.
야곱 역시 막벨라 굴에 묻힙니다. 막벨라 굴은 족장들의 무덤입니다.
야곱의 진정한 아내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충동적인 게 아닙니다.
평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특별한 게 튀는 것, 그게 은혜인 줄 알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삶을 지킬 때 능력을 주십니다.
 
일상의 삶은 권태롭고 지루합니다. 매일 매일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은혜고 그게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은혜를 아는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평소의 삶에서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게 레아의 승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주와 함께 동행하는 것,
그게 바로 가장 큰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 다 빼고 다 내려놓은 후에 주님을 의지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평소의 삶을 열심히 사십시오.!
감사하시고, 기도하시고, 말씀에 깊이 붙들리십시오!
그런 평소의 삶이 날마다 지속되는 게 하나님의 주시는 진정한 은혜의 삶입니다.
그렇게 라헬이 아니라 레아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시면서,
또 평범한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시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받아 누리는 하루 하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Adonai 15-11-19
      특별한 일상이 아니여도 매일매일 하루하루 살아갈수있게해주심 항상 감사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 은혜로다 15-11-19
      매일의 삶이 중요하다는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내일을 만들어 가는것이기에 더 일상을 소중히 여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