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26(수),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이사야 58;6-10
20260826(수),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이사야 58;6-10
이사야 5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찾고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상당히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가지 불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사 58:3)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금식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지 않으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금식 자체보다 금식하면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고 경건한 모습을 보였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자기 욕심을 추구했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며 다투었습니다. 문제는 금식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사람을 향한 삶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종교적 행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 사람을 살리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을 풀어주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의 짐을 덜어주며, 억압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운가?”
“내가 얼마나 기도하는가?”
“내가 얼마나 말씀을 읽는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한 가지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해야 합니다.
7절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말씀이 이어집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7)
여기에는 매우 실제적인 행동들이 등장합니다.
먹을 것을 나누고, 거처가 필요한 사람을 돌아보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막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입니다. 내 시간과 물질과 공간과 관심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희생이 따릅니다. 내가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해 사용하던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놓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7절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표현이 있습니다.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때로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면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보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듣지 않으면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사람의 어려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숨지 말라.”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보았다면 한 걸음 가까이 가고, 누군가의 어려움을 알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많이 말씀드립니다.
“주님, 이것을 해결해 주세요.”
“이 길을 열어주세요.”
“우리 가정을 지켜주세요.”
“내가 하는 일이 잘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오래 동행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오늘 제가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묻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 문제가 가장 크게 보였는데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시선은 ‘나’에게서 ‘이웃’에게로 넓어집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삶 뒤에 아름다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8)
그리고 10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사 58: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빛은 화려한 종교적 행동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며, 누군가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질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돌아보는 작은 사랑을 통해서도 세상을 밝히십니다.
이번 주 묵상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월요일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묵상했습니다. 화요일에는 그 믿음이 예배와 종교적인 행위에 머물지 않고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닮는 사람은 결국 이웃을 향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가장 구체적인 자리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 내 문제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주변에서 힘들어하는데도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조금만 시간과 관심을 내어주면 힘을 얻을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은 막연하게 “사람들을 사랑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한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안부를 묻는 문자 한 통, 혼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식사 한 끼를 함께할 수도 있고, 힘든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사랑이 다시 일어날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이웃에게로 향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내 주변에서 내가 먼저 돌아보고 사랑해야 할 한 사람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생각과 마음에만 머물지 말고 작은 행동 하나로 사랑을 표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