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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8(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라, 시편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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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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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8(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라, 시편 121;1-8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절)
그리고 곧바로 대답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절)
순례자는 눈앞의 현실을 보면서 자신의 도움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우리 역시 어려움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바라봅니다.
믿음은 자신의 연약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도움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를 바르게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의 미문 앞 사람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걸을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성전 문 앞까지 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 역시 도움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도움은 곧 동전 몇 개였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이미 ‘도움의 형태’를 정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형편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은 때로 우리가 생각한 방법보다 훨씬 깊고 큽니다.
2절은 1절의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기자는 단순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왜 굳이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했을까요?
눈앞의 산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내가 걸어가는 길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보다 하나님께서 더 크신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문제의 크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문제에만 머물면 문제는 점점 커 보입니다. 사람에게만 머물면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시선을 창조주 하나님께 돌리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누가 나를 도와줄까?”에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길에서 나와 어떻게 함께하실까?” 로 바뀌게 됩니다.
3절부터 시편의 중요한 단어 하나가 반복됩니다. ‘지키다’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편은 처음에는 ‘도움’을 묻지만, 그 대답은 반복되는 ‘지키심’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순례자에게 여전히 길은 남아 있습니다. 걸어야 할 산길도 있고 뜨거운 낮과 긴 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달라집니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24시간 나를 지켜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순간도 자기 백성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편과 이번 주일 본문인 사도행전 3장은 특별히 ‘시선’이라는 주제로 잘 연결됩니다. 성전 미문의 사람에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우리를 보라.”(행 3:4)
바로 여기에서 시편 121편의 질문이 중요해집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사람의 손에서 하나님의 얼굴로, 받을 것에서 주시는 분으로, 동전엣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눈을 들어야 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번 주일 말씀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신앙에서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만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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