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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5(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미가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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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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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5(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미가 6;6-8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

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제사를 드렸고 종교적인 의식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사회에는 불의가 있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억압했으며, 신앙과 삶이 서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미 6:6)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는 질문입니다.

번제물입니까? 일 년 된 송아지입니까? 수천 마리의 숫양입니까? 수많은 기름입니까?

질문은 점점 더 큰 제물로 확대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제물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원하셨습니다.

 

8절에서 미가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신앙생활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국 우리의 일상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드렸느냐의 문제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본문은 먼저 “정의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생각하라’가 아니라 ‘행하라’입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실제 삶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정의는 거창한 사회적 문제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 나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잘못된 일을 선택하지 않는 것, 힘없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권리와 몫을 존중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때로는 신앙적인 말을 많이 하면서도 자신의 유익 앞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배당에서의 우리의 모습뿐 아니라 일상의 선택까지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시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자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인자’는 단순히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정도를 넘어, 사랑과 자비와 신실함을 품고 관계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본문이 단순히 인자를 행하라고만 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착한 행동을 몇 번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정죄하기보다 다시 기회를 주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다가가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옳은 말을 하면서도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에는 정의와 함께 인자가 있습니다. 옳음을 붙들되 사람을 잃지 않고, 진리를 말하되 사랑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매일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걸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면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방향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겸손은 자신을 무조건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미가 6장의 중요한 메시지는 예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예배와 삶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일상에서는 불의를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예배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주일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찬양하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예배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주일에 하나님 앞에 드렸던 고백이 가정에서 가족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고, 일터에서 사람을 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돈과 시간과 관계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주일의 나와 평일의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이번 주일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는 솔로몬의 행각에 서 있었습니다.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난 후 사람들의 시선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이 모습은 미가가 말하는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베드로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의 베드로는 자신이 높아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누가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예수님께 돌립니다.

어느덧 베드로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종교적 활동을 하고 있는가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나타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늘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훨씬 가까운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 

상처 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 

내가 옳다고 고집하기보다 한 번 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는 것.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의 예배와 나의 삶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사람들은 나의 평일의 모습을 통해서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오늘 내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할 구체적인 자리는 어디입니까?

 

오늘은 거창한 일을 계획하기보다 한 가지를 실천해 봅시다.

정직해야 할 자리에서 정직하고,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중요한 선택 앞에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시다.

그 작은 삶의 선택이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예배드리는 모습과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 않게 하옵소서. 정의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하게 하시며, 인자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랑하게 하시고, 내 생각과 힘을 앞세우지 않고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과 나의 작은 선택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시고, 나의 믿음이 삶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