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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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수) 전쟁중의 최일선에서 드린 예배, 대하20;20-23

  • 최고관리자
  •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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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이해 

아버지 아사왕을 이어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된 후에 모압과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20:1).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하며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그동안 말씀으로 양육받은 경건한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때 유다 백성들은 남녀, 어린 자녀들까지 다 하나님 앞에 모여있었습니다(20:13). 그리고 레위인 야하시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20:140). 그는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두려워말고 싸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라고 말했습니다(20:15).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면 견고히 서게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20:20).

여호사밧은 말씀을 받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외치면서 성가대를 군대 앞에 세워 진군하면서 찬송하게 하였습니다(20:21).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하나님께서 복병을 일으켜 모압, 암몬 연합군을 치셨습니다. 이어 모압 연합군들은 자기들 안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게 하심으로 서로 싸우며 스스로 자멸하게 됩니다(22,23). 결국 선지자의 예언대로 큰 승리가 주어졌고 이 소식은 다시 이방 나라들에게 전파되어 유다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2. 묵상

1) 야하시엘 선지자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견고히 서고 형통케 될 것임을 예언하자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선지자의 말을 신뢰하라고 촉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율법 혹은 다른 말씀을 주실때에 모세나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 말을 신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말씀대로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형통한 삶을 살았고, 반대로 배척하고 핍박한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당신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물론 오 늘날에는 선지자를 세워 어떤 새로운 계시의 말씀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종들을 세우고 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받아야 합니다우리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들을 배척할수도, 신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형통함을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이며, 왕입니다. 제사장이란 중보자요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요, 왕은 다스리는 자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 새긴 말씀을 자녀들에게 전함으로 형통함(세대간 신앙전수)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자녀들이 신앙의 자리에서 멀어진 것만큼 심각한 심판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 여호사밧은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21). 이것은 참으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여호사밧은 지금 평안한 때에 성전 예배의 순서를 맡은 찬양대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명한 것이 아닙니다. 찬양단이 찬양을 한 곳은 전쟁터의 최 전선입니다. 군대의 호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군대 앞에서 행하며 하나님을 찬앙했습니다. 아무런 싸움 준비도 안된 찬양대로 군대의 선봉에 서게 한 것도 우습지만, 적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듯 전진하면서 찬양하게 한 것을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그 일을 통해 승리를 올렸습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을 향해 마주 나아가라 하셨는데 여호사밧은 찬양대까지 갖추어 찬양하며 나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감사와 찬양은 성도들의 승리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 근거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일은 중요합니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참된 승리를 얻기 위해 항상 믿음과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지금 상황이 안 좋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의 터널 속에서도 우리가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여호사밧이 드린 찬양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하심입니다. ‘자비하심은 히브리어 헤세드로 인자, 자비, 친절, 긍휼 등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이 헤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계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헤쎄드)를 베푸실 것이라"(7:12)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 언약을 지키셨지만 이스라엘은 성실히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게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태초부터 끝날까지 번하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의 참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 사랑과 긍휼하심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에 대하여 일관성이 없고나의 부족함 때문에 언약을 파기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랑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고,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우리 인간을 향한 그 사랑을 접지 않으셨고 한결같은 사랑과 자비로 보살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하고 영원한 사람이 우리의 믿음의 근거이며 의지하는 우리가 안정감과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감사와 찬양의 결과는 예언하심대로 승리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복병을 일으켜 싸우게 하시고 암몸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주님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스스로 피차에 살륙하였다고 23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곧 남유다 백성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당시 남유다에는 많은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군사를 동원해서 남유다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유다를 침공한 이방 연합군 사이에 자중지란을 일으켜 스스로 망하게 하심으로 남유다를 구원하셨습니다. 

5) 하나님이 남유다를 구원하신 방법은 남유다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남유다를 구원하심으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이나 방법을 초월한 놀라운 방범으로 응답하시기도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이 사용하지 못할 방법은 없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셧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작은 군대로 큰 군대를 싸워 이기게도 하시며, 또한 작은 소년이 거인과 싸우 이기기도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인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11:2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인간의 생각과 논리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입술과 마음으로 믿으시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가운데 거하시기를 소망합니다. 

6) 본문과 연관되어 주목하게 되는 구절이 앞부부인 13절입니다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대하20:13) 여호사밧 왕은 유다의 모든 가족과 자녀들앞에서 기도했습니다. 위기앞에서 함께 금식하며 회개의 자리에 서게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하게 하시는지를 보게 했습니. 이것이야 말로 신앙전수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유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경험은 앞으로 가정마다 인생마다 위기앞에서 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그 길을 따라가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 역시 가족안에서 자녀들에게 문제앞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영적 제사장인 부모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확인하고 인생에 어느 순간에 경험하게 될 위기앞에서 무엇을 할것인가? 아버지가 행했던 그대로 하면 되지 라는 고백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전수가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7) 이 전쟁에서 놀라운 것은 군대가 아니라 레위지파로 구성된 찬양대를 제일 앞에 둔 것입니다. 찬양이 시작될 때 하나님이 적군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 마음에 합치는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위기앞에서 찬양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의 도구이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인지를 깨닫습니다. 우리도 가정안에서 힘들때마다 더욱 찬양이 솟구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뇌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과 반복을 통해서 습관으로 자리하게 됩나다. 그리고 위기때 우리의 의식은 습관화 된 것에 의해 자동화반응으로 찬양할 수 있게 됩니다.

8) 여호사밧이 처음부터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합 가문과 혼인을 하고 잘못된 선택인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후 선지지를 통해 호되게 꾸지람을 받고 침체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한 다음 의연하게 다시 일어서서 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실패에 주저앉지않고 회개한 뒤에 다시금 하나님의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유다 모든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 애썼습니다. 이런 여호사밧과 나라에 모압과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둔 여호사밧에게는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기에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9) 여호사밧의 리더십을 묵상해 봅니다. 탁월한 리더는 그 사람이 있을 때에만이 아니라 그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사람이 동일하게 그 믿음의 길을 걷게 하는 데 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가나안까지 들어가려하지 않았고 내가 감당할 분량만 감당하고 그 자리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리더십이 탁월할수록 그것을 다음 세대에까지 계속 이어가기란 힘든 일입니다. 아사왕은 41년 동안 유다의 왕으로 있으면서 말련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감정이 상해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이 있기는 했어도 그 아들 여호사밧은 오랫동안 유다를 다스린 아버지의 그늘이 컸습니다. 아버지 아사를 능가하는 거룩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신앙의 1세대들은 자녀들보다는 더 확실합니다. 그러나 내가 떠난 뒤 내 자녀들이 나의 믿음을 토대로 더욱 좋은 리더십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 나의 손주들과 그 후손들까지 잘 물려줄 수 있다면 내가 정말로 잘 살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모든 역대 왕들이 다윗이 길을 걷는가 아닌가로 선한 왕인가 악한 왕인가를 기준 삼듯이, 나의 후대들도 믿음의 길을 걸어갈때마다 내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의 길로 가면 된다는 거룩한 삶이 지금 나로부터 시작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의 삶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자 기대감으로 가득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