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40405(금), 이유를 살피라, 벧전4;12-19

  • 최고관리자
  • 2024-04-05
  • 142 회
  • 0 건

[묵상가이드]

고난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모든 고난은 내 죄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내가 저지른 죄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여기는 입장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고난도 내 잘못이 아니며, 나는 어떤 잘못도 없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 두 관점은 각각 한계가 있습니다. 고난은 다양한 이유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행동이 원인이 되고, 때로는 살아가는 환경이나 믿음이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시련을 겪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신자들에게 이러한 고난의 원인을 살펴보라고 격려했습니다. 

신자는 먼저 개인적인 죄가 개인적인 어려움을 초래 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인이나 도둑질과 같은 잘못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다른 죄는 그 만큼 분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생활 방식을 떠남으로써, 자신이 야기한 고통을 없애야 합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는 적극적인 신앙의 결과로 어려움이 올 수 있습니다. 다가올 왕국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죄 많은 세상이 우리를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우리는 찬양으로 응답하고 신실한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일시적인 지상 생활을 돌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이해] 

성도가 통과해야 할 불시험(12-16)

성도는 고난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이상한 일이나 놀랄 일이 아닌,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해야 할 테스트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하는 고난의 불시험은 우리 믿음의 진정성을 드러내 줍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도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고난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고난이 가져올 비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세상의 길과 다른 주님의 길을 걷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방과 눈총과 조롱을 받을 때, 흔들리거나 위축되지 맙시다. 그런 고난은 그 자체로 영광이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어떤 고난의 테스트도 없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고 놀랄 일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테스트 하시지만 그 목적은 우리의 유익입니다. 나는 고난이라는 필수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하며 치르도록 영적으로 잘 대비하고 있나요?

불순종하는 세상이 받을 불심판(17-19)

그리스도인만 불시험이 있는게 아니라, 마지막 날 온 세상이 통과해야 할 불시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과 종말에 세상이 받을 고난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불시험(심판)은 테스트에 합격해 상을 받게 할 목적이기에, 징벌이 아닌 공정한 평가와 연단의 과정입니다. 물론 그 테스트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치르는 불시험이 그 정도로 혹독하다면, 끝까지 복음에 불순종한 세상이 통과해야 할 심판은 어떨까요? 성령님의 도움을 힘입은 의인들도 겨우 통과한 시험이라면, 하나님 없이 끝까지 불순종한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하고 공의롭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험이라면 잘 통과하고 최종합격하려고 해야합니다. 고난 중에도 미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을 행하는 성도로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지만, 누구나 고난을 잘 통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과 미쁘심을 굳게 의지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묵상] 

그리스도인이란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한 감당하기 두려운 이름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께 사로잡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또다시 죄에 빠져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고난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죄를 끊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에 당하는 고난,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에 당하는 손해와 모욕 그리고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에게 수치가 아니라 영광입니다. 그 고난은 우리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런 고난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까? 혹은 이런 고난이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습니까? 우리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면, 부끄러워할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날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다려지는 날이고 소망의 날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다면,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머리를 짜내는 대신, 계속 선을 행하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복될 것입니다. 그 복이 어떤 복인지 우리 모두는 주님의 심판날에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