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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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4(월) 평화보다 진리입니다, 딛 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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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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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10-16

10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3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2)온전하게 하고

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공간은 갈등을 즐기는 구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비판하고 조롱하며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 말들은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무너뜨리고 진리를 흐리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며, 그것은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사람이 많은데

특히 할례당 가운데에 심하니”라고 말합니다(딛 1:10).

 

거짓 교사는 교회 밖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교회 안에도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신앙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사람들을 세우지 않고 무너뜨립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분명히 말합니다.

“이런 자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도다”입니다(딛 1:11).

 

바울은 이런 상황 앞에서 침묵을 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라고 말합니다(딛 1:13).

엄히 꾸짖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목적은 논쟁의 승리가 아니라, 믿음의 건강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냥 넘어가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외면한 평화는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말씀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입니다(딛 1:14).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때로는 거짓에 힘을 실어주는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말씀은 삶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입니다(딛 1:16).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믿음에 굳건히 서는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기도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번 주 묵상은 선한 전쟁을 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거짓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감정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진리를 붙드는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편안한 침묵보다 불편한 진리를 택하는 삶이 되십시오.

사람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하루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