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40322(금), 영원한 소망, 벧전1;1-12

  • 최고관리자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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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이 편지는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교회를 향한 핍박이 시작되고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어느 한 교회가 아니라 소아시아 지방(지금으로는 터키)에 흩어져 사는 교회(성도들)들이 가진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며 격려하기 위해 썼습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흩어진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1). 흩어져 있다는 말이나 나그네라는 말이나 다 구심점 없고 지지기반 없는 처량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듯,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마치면 교회는 영원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교회가 가진 한 가지 소망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소망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현재 상황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모든것을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아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천국보다 이 땅의 것을 더 사랑하지는 않나요?

나그네는 소유한 게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그네 길을 편하게 갑니다. 나그네 인생을 사는 동안 교회는 잠시 스치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 때도 많습니다. 이 땅에서의 소유는 잠시 왔다 갑니다. 그래서 거기에 우리의 소망을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산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유업,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참된 소망이며 찬송의 제목입니다.

최근에 감사의 예물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어떤 이유로 했습니까? , 이 땅의 욕망이 채워질 때만 감사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 땅을 사는 교회는 환난과 고통, 시험과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교회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지금은 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8). 둘째로, 주님께 칭찬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7). 마지막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9). 신약의 성도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복음 안에서 이 약속을 듣고 있습니다(12). 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장래에 대한 소망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3. 묵상

1)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에서 거듭 사용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룩이고 다른 하나는 나그네입니다. “거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에 이 땅에서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나그네가 어느 동네에 나타나면 금새 눈에 뜨입니다. 주민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피로 새로 태어납니다. 또한 하늘에 속한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그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 구별됨으로 인해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지금 구원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구원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의 말과 행실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 구별됨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얻은 구원이 과연 내 삶에 차별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구원의 놀라운 은혜와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시련에 처할때가 많습니다. 성도는 시련 자체보다 그것으로 인해 오는 의심과 불안으로 인해 마음과 시각이 움츠러 들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니 힘든 현실의 문제 때문에 구원의 감격과 하늘 소망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시련가운데 있는 소아시아 교회(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대한 찬송으로 이 서신을 시작합니다그것은 성도는 아무리 힘든 시련 속에서도 현실의 문제에만 마음과 시각이 고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하늘의 산 소망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자는 시련 중에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 비록 시련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하여도 그러한 고통 중에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비밀입니다. 

구원얻는 성도들이 가진 하늘의 소망은 땅의 소망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땅에 속한 소망은 결국 소멸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와 높은 지위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결국 썩고 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땅의 소망은 죽은 소망입니다그러나 성도가 간직한 하늘의 소망은 결코 썩지도 쇠하지도 않는 영원한 것이며, 현재에도 그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용기와 생명력을 공급해 줍니다.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소망은 (living)’ 소망이라 할 수 있다거듭난 성도가 간직한 하늘의 산 소망이야말로 진정 시련 중에서도 감격적인 찬송을 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습니다.

    • 최고관리자 24-03-22
      베드로전서 배경 이해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의 거룩한 나그네의 삶 및 고난 극복의 자세를 권면하는 격려의 서신

      먼저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서두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사도 베드로입니다(1:1,2). 본 서신의 기록 당시 베드로는 로마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5:13). 교회사의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자신의 마지막 수년간을 로마에서 보냈으며, A.D. 68년 네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로마 정부의 대대적인 정치적 박해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4:12-19), 본 서신은 A.D. 64년 네로가 로마시의 대화재를 그리스도인의 소행으로 몰아 대박해를 감행한 이후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교회사의 전승과 역사적 배경을 종합해 보면, 본 서신은 베드로가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직접 목격하고서, 그 박해의 광풍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임을 예감한 상황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소아시아(Asia Minor) 일대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이다. 당시 수신자들은 이방 사회 속에서 여러 가지 애매한 고난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즉 드러내 놓고 그리스도인 임을 밝히기 어려웠던 당시 정황상 그들은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 한 예를 들어, 이방인들의 음란하고 방탕한 삶과 달리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곧 미움과 비방을 초래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4:4). 다수의 이방인들 중에서 소수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형편은 마치 낯선 환경에 처한 이방인이자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들과도 같았습니다. 더욱이 로마에서 발생했던 대박해의 소식은 이내 이들에게도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여러 가지 고난 중에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성도들로서는 로마 대박해의 소식은 커다란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소아시아 일대에 흩어진 성도들은 그야말로 ‘불 같은 시험(fiery trial)’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록된 서신으로서, 불 시험에 직면한 흩어진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서 고난을 극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격려의 서신(the Epistle of Encouragement)’입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베드로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그들의 신세를 영적으로 승화시킵니다. 즉 수신자들은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이방인과 나그네들로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거룩한 족속(chosen people)’이며 영원한 기업인 천국을 향해 순례의 길을 가는 ‘거룩한 나그네들(holy strangers)’이라고 하는 신분적 정체성(正體性)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거룩한 나그네라는 신분적 정체성을 가지고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고난에 대해 어떤 인식과 자세를 가지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고난받다’라는 뜻을 지닌 ‘파스코’라는 헬라어 동사가 12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본 서신을 제외하면 신약 서신서 전체를 통틀어도 11회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물론 단어 사용의 횟수가 전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고난이 본 서신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