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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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 (수)내 뜻을 내려놓는 절대 순종의 기도(막14 : 32~42)
- seanho
- 2020-04-08
- 425 회
- 3 건
2020.04.08 (수)
내 뜻을 내려놓는 절대 순종의 기도
마가복음 14 : 32~42
오늘의 찬송
(새 150 통 135 갈보리산 위에)
아버지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 14:32~36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육신에 굴복하는 제자들 14:37~42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본문해설
아버지 뜻에 순종하시는 예수님 14:32~36
기도는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하는 동력입니다.
겟세마네는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에게 고독의 자리요 마지막 소망의 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예수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한 사명 성취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33절)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4절)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심경을 잘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갈등 가운데서 위대한 기도를 하십니다.
인간적인 소원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이지만, 기도의 결론은‘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6절)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 온전한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사명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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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에서 예수님 내면의 갈등은 어떠했으며, 기도의 결론은 무엇이었나요?
내 뜻과 하나님 뜻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육신에 굴복하는 제자들 14:37~42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힘든 기도의 시간을 보내신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육신의 잠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순간에 기도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달리, 베드로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기도로 준비되지 못한 베드로는 잠시 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해,
인생에서 가장 무력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맞게 됩니다.(14:66-72)
반면 기도로 무장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죄 사람을 위해 당당히 나아가십니다.(42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분이 어쩔 수 없이 당한 수동적 비극이 아니라,
그분의 능동적 주도로 진행됩니다.
강력한 기도가 선행 될 때 우리는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 없이는 가장 사소해 보이는 욕구에도 쉽게 무릎 꿇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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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충분한 기도 시간을 갖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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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nho 20-04-08
-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명을 앞두고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가신다.
혼자 가지시 않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가신다.
혼자서도 기도하러 가시는 예수님이셨는데, 이 날은 함께 기도할 동지가 필요하셨을까?
34절 말씀에서는 제자들에게 솔찍한 심정을 털어 놓으면서 "깨어 있으라." 말씀하신다.
제자들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고민하여 죽겠다고 까지 말씀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잠이들고 만다.
예수님 홀로 심각하게 기도의 자리로 나가셨다.
제자들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나눠갖고 함께 기도하지 못했다.
반면 예수님은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눠갖고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대조되는 선택을 하신다.
나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가? 나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눠 받고 있는가?생각하게 되어진다.
어쩌면 지금도 예수님은 나를 보며 '내가 이러한 일들 때문에 고민하여 죽을 것 같이 답답하구나.'라고
말씀하시며 함께 기도하자고 말씀하시지않을까?
제자들 처럼 내 삶이 바쁘고, 지쳐서 주님이 함께 기도하자. 함께 고민하자. 하는 말씀을 외면하고는 있지 않은가?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님이 '나와 함께 깨어있자.'하시는 음성에 주목해야겠다. -
- 느헤미야강 20-04-08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의 원대로 잔을 옮겨 달라는’ 말과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이 한 문장이다.
두 말이 아무리 한 문장으로 연결되었으니
한 문장으로 축약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된 사람이 그렇게 쉽게,
그렇게 빨리 죽음을 결단할 수 없다.
세 번 기도를 중단하고 제자들에 오시기까지
그 기도의 시간이 두 개의 소원을 하나로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주님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나와 같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한 주님이 근심에 잠겨 심히 괴로워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특별히 베드로와 아고보와 요한에게 부탁했다.
세 사람에게만 기도하라고 했을까?
이 일은 평소에는 없던 일이다.
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해 달라는 뜻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거였다.
어쩌면 고난의 때에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나에게 보여주려는 뜻으로 읽혀진다.
기도하신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실 준비가 되었으나
기도해야 할 때 잠만 자던 제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앞에
모두다 흩어져 도망갔다.입니다.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이 그때 예수님의 고난과 기도의 뜻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달라졌을 것이다.
‘깨어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가 필요할 때 하는 기도’라는 것이지 싶다.
오늘 직면한 상황도 기도할때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잠자는 사람이 될 것인가?
주님은 세 번 기도를 하셨다.
주니므이 기도는 가장 처참한 장면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비참한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가장 위대한 기도이다.
그 기도로 인해 인류에게 비로소 구원이 임했다.
예수님의 기도요청은 동역의 요청이었다.
중보는 힘이 있다.
기도가 사역이고, 기도가 능력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역이다.
어려운 때에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별히 딱한 사정과 형편에 처해 있는 사람들,
심하게 고통 당하고 있는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어려움을 이미 겪어 봤다면 더 기도해야 한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더 절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보는 힘이 있다.
나의 기도로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
나의 기도로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이 소망을 얻을 수 있고,
고통과 고독과 고뇌 속에 있는 사람이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중보기도자로 부름 받았다고 믿는다. -
- 디모데준 20-04-09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이며,
하나님의 바램과 사람의 바램이 다르다는걸 보게 된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어하셨다
그러나 기도로 사람의 바램을 버리고 하나님의 바램을 이루셨다.
예수님과 반대로 요나는 하나님의 바램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바램을 ?아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요나의 모습에서 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기도없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으며,
기도만이 나의 바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바램을 이룰수 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기도 할 줄 아는 내가 되길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