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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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 (토)주님을 존중하는 참제자, 말씀을 무시하는 불신자(마27 : 57~66)

  • seanho
  • 20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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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1 ()

 

주님을 존중하는 참제자, 말씀을 무시하는 불신자


마태복음 27 : 57~66

 

 

오늘의 찬송

 

(151 138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예수님을 섬기는 헌신 27:57~61

 

57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말씀에 대한 어리석은 반응 27:62~66

 

62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본문해설

 

 

예수님을 섬기는 헌신 27:57~61

십자가를 통해 변화된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큰 부자였고

빌라도를 개인적으로 만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도 예수님 제자였지만

자신의 부와 기득권 때문에 공개적으로 섬기지는 못했습니다.(19:38).

그랬던 그가 십자가 사건을 겪고 변화되어 빌라도에게 찾아가 당당히 예수님 시신을 요구합니다.

이런 결단은 용기와 헌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권력층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시신이 새 무덤에 안치됩니다. 제자는 사람들 앞에서 용기 있게 주님을 드러내고,

또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자도는 자기 것을 내어 드리며 주니을 섬기는 순전한 헌신으로 더욱 견고해집니다.

-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위해 새 무덤을 내어 드린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내어 드릴 수 있을까요?

 

 

말씀에 대한 어리석은 반응 27:62~66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듯, 기억하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속이던자’(63)로 인식할 뿐 부활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치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속임수를 쓰면 더 큰 소란이 날 것이라며 염려합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경비병을 시켜 돌문을 인봉하고 굳게 지키게 합니다.

믿음의 고백은 있지만 정작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 제자들이나,

말씀을 알지만 믿지 않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신앙 성장에 필수 요건입니다.

-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예수님이 전해 주신 진리의 말씀들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seanho 20-04-11
      묵상

      완전한 죽음 뒤에 완벽한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었다.
      59절에서는 시체라고 기록하고, 수의를 입으셨고, 60절에서는 돌무덤에 장사되고, 그 입구를 돌로 막아버렸다.
      완전한 죽음의 증거이다.
      그리고 그 무덤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세상의 관점이고, 세상은 이 것을 '끝'이라고 한다.
      그러나 구원의 계획에서는 완전한 죽음이 있어야 완전한 부활이 있는 것이고,
      세상 관점의 완전한 끝 처럼 보이는 '죽음은' 하나님 안에서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믿는 자의 거듭남도, 구원도 그런것 같다.
      완전히 죽어야 한다. 내 소망이 사라져야 한다. 끝을 경험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은 없다.
      나는 내 자아의 무덤을 준비하였는가?
      나는 내 자아의 수의를 준비하였는가?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음을 고백하면서도 십자가에 완전 죽지 않고,
      감동만 찔끔 받고는 십자가에서 살아 돌아와 예전처럼 살고있지는 않은가?
      오늘도 부디 잘 죽어지기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디모데준 20-04-12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누구인지 아는것과 주님을 직접 경험한것은 매우 다르다는걸 보게 된다.

      아리마대 요셉과 또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을 보면,
      주님을 알고만 있었던 삶과, 주님을 만났을때의 삶이 다르다는걸 볼수 있다.

      나 자신만을 위하던 삶이,
      주님을 위해, 또 공동체를 위하는 삶으로 바뀌어져 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랑의 수고와 헌신이 그들 삶가운데서 실천 되었다.

      주님이 누구신지 아는 지식에서 멈추는게 아닌,
      그분을 만나 그 아는 지식들이 내 마음과 삶 가운데 스며들며 나타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