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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수) 요일3장_성령과 거룩, 그리고 사랑
- 느헤미야강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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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성령과 거룩, 그리고 사랑
사도 요한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푸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1절).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야말로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분처럼 변화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그분처럼 거룩하게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2-3절).
여기서 사도는 다시금 죄에 대해 설명합니다.
죄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하는 “불법”(4절)입니다.
4절, 6절, 8절 그리고 9절에 거듭 나오는 “죄를 짓다”는
“죄를 습관적으로 짓다” 혹은 “계속하여 죄를 짓다”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계속적인 행동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8절)라는 말은
죄의 힘에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은 사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의 일”(8절) 즉 인간을 죄의 노예로 부리는 일을 멸하기 위해
죄 없으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5절).
그렇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 사는 사람”(6절)
혹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9절)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도 죄의 유혹에 넘어질 수는 있지만
다시 털고 일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습관적인 죄 중독자의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단지 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 시키려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해방 시키시는 이유는
성령의 능력 아래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중심은 곧 사랑입니다(11절).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미워하고 결국 살해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12절).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시기와 질투와 배척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13절).
그런 상황에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14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대로 믿는 사람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미워하는 것도 곧 살인이기 때문입니다(15절).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구원 받은 우리이기에 우리 또한 그 사랑을 닮아 살아야 합니다(15-16절).
그 사랑은 궁핍한 형제 자매를 돕기 위해 자신의 물질을 나누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17절).
진실한 사랑은 “말이나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진실함으로”(18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면 두 가지의 유익을 얻습니다(19절).
첫째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고는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실천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마음에 가책”(20절)을 가집니다.
연약함으로 인해 죄에 넘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가책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21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22-24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 안에 머물러 살아갈 때
우리를 옥죄고 있던 죄의 결박은 힘을 잃어 버립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 성 때문에 때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도 하지만
성령의 능력 아래에 머물러 살아갈 때 우리는 점점 거룩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성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진실한 사랑의 능력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흘러 들어올 때
우리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행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에게 속해 있으며 이미 영생 가운데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 성령께 내 존재를 내어 드립니다.
아직도 나를 넘어뜨리고 있는 죄의 힘을 제거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에 능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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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9-25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장 23절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은 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저가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계명을 따르는 것인데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죄를 위해 십자가에 지셨던것 처럼,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은 것 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사랑의 힘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힘으로 예수님의 사랑 행할 수 있게 되는것이다. 물론 예수님처럼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조금은 닮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