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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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금) 요한8장_진정한 자유
- 느헤미야강
- 2019-03-29
- 453 회
- 2 건
요한 8장_진정한 자유
예수님이 성전을 떠나 올리브 산에 계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옵니다.
그들은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사랑의 가르침을 적용하신다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모세의 가르침(레 20:10; 신 22:22-24)을 위반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고발할만한 좋은 구실이 됩니다(6절).
그래서 그 여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앉아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6절).
군중들의 감정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한 참 후에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7절)고
말씀하시고 다시 앉으셔서 계속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9절)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먼저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 당하여
자기의를 내려 놓고 떠나갔고 젊은이들이 그들을 따라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시면서
다시는 죄 짓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11절).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뿐 아니라
그분의 영적인 영향력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다시금 성전 뜰로 오셔서 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먼저 그분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1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태양빛이 모든 물질 생명의 빛이듯,
영적 생명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자기 주장이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신에 문제가 생겼거나 영적 사기꾼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내가 곧 나’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28절).
6장 20절에서 보았듯,
이것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내가 곧 나'(I Am)라고 당신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고
또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거짓의 아비”(44절)인 사탄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만,
사탄에게 속해 있는 사람은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31-3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 안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먼저는 사탄의 속임수에서 자유 하게 하시고,
죄의 유혹에서 자유 하게 하시며,
온갖 비진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33절)라고 반문합니다.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는 죄의 노예로, 욕망의 노예로, 사탄의 노예로,
거짓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영적으로 속박 가운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에 이르는 첫 걸음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당신의 정체성을 거듭 밝히시는데 유대인들은 거듭 오해합니다.
예수께서는 영을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육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에게
“이제 우리는 당신이 귀신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52절)라고 단언합니다.
육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예수님은 지금 헛소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 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이 당신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56절).
유대인들은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57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58절)고 답하십니다.
“내가 있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있다”고 답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일차원적인 시간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에 대해서는 과거시제와 미래시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나는 나다”(I am who I am)이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십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가 전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영원의 차원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인류의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
또한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보게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와 영원의 차원에 눈 뜨고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입니다.
마치 눈에 끼었던 비늘이 벗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실을 제대로 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헛것을 보고 있고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실은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우리도 때로 그런 소리를 들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원한 차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항상 합리적으로만 보인다면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음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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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3-30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1
간음하여 잡혀온 여인이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 여인은 죽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이 여인을 치라. 그러나 아무도 돌 던지는 자가 없었다. 이내 이 여인과 예수님만 남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셨다.
예수님을 만나면 죄를 용서 받은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기를 당부하신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둠에 있을 수 없다. 빛이긴 예수님께서 환하게 비추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죄와 싸워야 하는 이유이다. 나를 이 여인과 같이 죄에서 사망에서 건져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는 죄 짓지 않기를 노력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고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기를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도와주시고 그 환한 빛을 언제나 비추어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어둠으로 가득 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삶을 예수님께서 생명의 빛으로 비추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기대한다. -
- 이형원전도사 19-04-03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간음한 여인이 잡혀왔고 꼼작없이 돌아 맞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간음한 여인은 동정할 이유가 없었고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죽이려고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 여인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고 싶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일부러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무엇인가를 적으셨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여인을 치라는 말을 했을 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다들 물러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죄없는 분이기 때문에 이 여인을 능히 칠 수 있었지만 그 분 또한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많은 죄를 저지른다. 그러면서도 때로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사람을 정죄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죄보다는 사랑이 먼저 이시고 또한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심을 보게된다.
이러한 은혜 때문에 내가 살 수 있고 또한 내가 정죄하려고 하는 그 사람도 예수님의 이러한
은혜가운데 있는 자임을 알아야한다.
언제나 정죄함 보다 사랑이 우선이 되었던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길 원한다.
누군가가 잘 못한 일이 있으면 위하여 기도하고 또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주는 삶이
우선이 되길 바란다. 또한 나 역시 같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