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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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요한11장_영생에 이르게 하는 믿음

  • 느헤미야강
  •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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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요단 강 건너 쪽에 물러가 계시는 동안에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두 누이로부터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은 사람입니다.

그 일로 인해 예수님은 세 남매와 깊은 우정을 이어가셨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시는 동안에 주로 나사로의 집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 산에 있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3)

즉 나사로가 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나서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4)라고

말씀하시고는 그곳에 이틀을 더 체류하십니다.

이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의 집으로 찾아

다시 유대 지방으로 가십니다.

제자들은 유대로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예수님을 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를 깨우기 위해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심지어 도마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결전을 벌이러 가시는 줄로 오해합니다(16).

 

예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뒤였습니다(17).

예수께서 전갈을 받으셨을 때 이미 운명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가 마중하러 나갑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르다는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21)라면서

속히 서둘러 오지 않으신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22)라고 말합니다.

마르다가 말하는 무엇이나라는 그 말속에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 것이다”(23)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24)라고 응답합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마지막 날에

모든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6)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부활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믿는 사람은 그분의 존재 상태로 이전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완전히 이루어질 일이지만

지금 이곳에서부터 시작될 일입니다.

마르다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헤아리지 못한 채로

,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27)라고 고백합니다.

 

마르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불러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28).

마리아가 급히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자 문상객들도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마르다와 같은 말로

서운함을 표시하면서(32) 슬프게 웁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하여 괴로워하셨”(33)습니다.

또한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십니다(35).

그토록 나사로와 두 자매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무덤 가까이 가신 다음 예수님은 무덤 문을 막아 놓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39)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40)고 말씀하시고는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4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이미 나사로를 살려 달라는 기도를 올리셨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임을 아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43)고 외치십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잠시 후에 무덤 안에서 허연 물체가 걸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 하여라”(44)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들은 공의회즉 산헤드린 자치 의회(47)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어찌할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 상황에 대해 염려합니다.

그 사실을 로마 총독이 알면 잔인한 진압 작전이 벌어질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48).

그러자 대제사장이면서 산헤드린 의장이었던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50)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한 사람을 제거하면 많은 사람들을

총독의 학살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인데,

실은 예수님 한 분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될 일을 예언한 셈입니다(51-52).

그 날로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하였습니다(53).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 지방을 떠나

광야에서 가까운 지방인 에브라임 마을로 물러 가십니다.

얼마 후 유월절이 가까이 오자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왔고

혹시나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반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유월절에 예수님이 나타나면

언제든 신고하도록 명령을 내려 두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그림자가 바짝 다가왔습니다.

 

묵상: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부활소생아니고 생명목숨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다 알지 못할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은

나는 시간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물리적인 차원에 묶인 존재가 아니다

혹은 나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의미로 보자면 나는 나다라는 말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분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10:38)는 말씀처럼,

믿음은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수님의 차원으로 옮겨집니다.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이미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 것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죽음은 예수님 안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을 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빛에서 보면 육신적인 죽음은 잠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잠시 눈 감고 예수님 안에 있는 나를 생각합니다.

또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분을 통해 영원한 생명 안에 옮겨진 나를 생각합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나를 생각합니다.

무한한 감사가 다시 벅차 오릅니다.

또한 이것을 모르고 물질과 육신에 붙들려

그것에 목 매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간절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거룩한 책임감이 나를 흔듭니다.

    • 김성민목사 19-04-0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11:9-10

      지난 주일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피해 도망쳤듯이 죄의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왜냐하면 똑같은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예수님과 동향하는 삶을 산다고 하지만 수 많은 사단의 공격에 무너질 때가 너무 많이 있다. 치열하게 그 싸움을 감당함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죄 앞에 무릎 꿇을 때가 너무 많다. 그런 나에게 오늘 말씀이 큰 힘이 된다.

      혹시 나는 그동안 죄의 자라에 있지는 않았는지, 더 나아가 죄의 자리에서 황급히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음으로 더욱 더 심한 죄의 유혹에 너출되어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론은 빛의 자녀는 빛 가운데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죄의 자리는 피해야 한다. 내가 의도하니 않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나에게 만들어진다면 도망처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둠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빛 가운데로만 걸어가게 되기를 소원한다.
    • 이형원전도사 19-04-05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요11:50)"

      예수님께서 죽은지 나흘이 지나 이제 냄새까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신다.
      그리고 이 일을 목격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또한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위기감을 주게 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게 되면 로마에서 자신들의 땅과 민족을 빼앗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중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염두해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 말이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미리 말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해의 제사장으로써 비록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무리들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또한 제사장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말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하실 때가 있다.
      이러한 일들을 곧 이일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진다. 때로는 옳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제사장을 통해서도
      그분의 뜻을 말씀하게 하시고 이루어가신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인가를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인정하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심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