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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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금) 요한20장_부활이 만든 결과

  • 느헤미야강
  • 2019-04-12
  • 390 회
  • 2 건

21장을 요한복음의 부록이라고 한다면

20장은 실질적으로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입니다.

20장의 마지막 30~31절은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을 밝혀줍니다.

이 마지막 장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기록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안식 후 첫날 새벽 날이 밝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무덤으로 왔습니다.

다른 복음서의 기록을 참고하면 그녀는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란 여인과 함께 왔습니다(16:1).

그녀는 돌이 무덤에서 굴려진 것을 보고

(무덤을 막은 돌은 서너명의 남자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말해주었습니다(1~2).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와 무덤 안에

주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개켜져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주님의 시신이 거기 계시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8).

8절에서 보고 믿더라는 말은

온전한 의미에서 주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저 주님의 시신이 거기 계시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정도였습니다(9).

 

두 제자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 무덤가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11).

그녀는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첫 사람이 되는 영광을 얻습니다(16).

그녀가 주님을 확인하고 다가서려고 하자 주님은 당신께서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으셨으므로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7).

이 말씀은 마리아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한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주님께서 마리아나 제자들과 가지시는 관계는

이제는 육체(인간)로 아는 관계가 될 수 없고,

성령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주님께서 지금 당장 떠나시는 것이 아니므로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17).

이것은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과 주님이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 제자들은

주님과 마지막 만찬을 하였던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두려움에 압도당하여 있었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19).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이 아닙니다.

몸을 여전히 가지고 계셨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시공간의 한계에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 서서 샬롬이라고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이 인사는 일상적 유대인의 인사라기 보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누리게 된

평화를 선언하시면서 그것을 누리라고 하시는 선언입니다.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써

주님 자신이심을 제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20).

다시 한 번 주님은샬롬을 전하시고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동안 나를 보내신 분에 대해서 수없이 말씀하셨고,

그분의 뜻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주님께서 이제 다시

제자들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은 아직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숨을 내쉬며 말씀하심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보냄받은 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숨을 내쉬며말씀하신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나서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사 살아있는 인간이 되게 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으심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그들은 이제 성령으로 사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사는 자들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그 뜻을 성취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죄 용서에 대한 23절의 말씀은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능력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결과를

말씀해주신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날 밤 제자들이 모였던 곳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을 통하여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들은 도마는

자기가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일주일 후(여드레를 지나서)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주님은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평강을 전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직접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27).

도마의 믿음을 세워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다시 오셨습니다.

 

본시 믿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에게 찾아오셔서

그렇게 믿기 힘들면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도마는 주님을 보고서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도마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게 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주님은 내다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

믿지 못하는 도마를 찾아와 그로 믿게 해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도 성령 안에서

모든 믿지 못하는 도마 같은 자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믿게 하신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요한복음은 결론적으로 믿으라고 권면합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믿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으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책이 쓰여졌다고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써 요한복음은 종결됩니다.

 

주님은 믿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오늘날에도 찾아오십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고 믿게 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는 성령으로 살게 됩니다.

그의 인생의 목적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기를 보내신 주님의 뜻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그의 인생의 가치입니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고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지금 살아가는 삶이요, 은혜입니다.

그 일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 김성민목사 19-04-12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자신들도 해를 당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함께 계신 것이다. 예수님이 함께하신 그 순간  두려움은 평강으로 변화된 것이다.

      진정한 평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함께하심이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냐, 그렇지 않는가가 평강의 기준이다.

      평강의 결과는 어떠한가.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담대하여 졌다. 자신을 죽일것만 같았던 유대인들을 찾아 거리로 나아가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다가왔을지라도 그들은 평강했다. 그곳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나기를 소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길 간절히 원한다. 죄와 세상에 휘둘려 날마다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평강하여 주님과 함께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믿음이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이형원전도사 19-04-16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특별히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이 말씀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예수님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모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모든 죽은자의 첫 열매가 되어주심을 보여주시는 사건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것은 곧 그 제자들도
      예수님께 사명을 받고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이제 보내심을 받아 그 분의 뜻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삶을 사는 사명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분의 부활하심과 하나님 되심을 믿는다.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은 또한 보내신다. 그리고 그 분의 뜻을 세상에서
      이루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주시고 또 그렇게 사용하여 주신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에 따라 열심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자의 모습이다.

      나의 삶의 모습에 예수님의 흔적이 남기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낸 것 같이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뜻대로 순종하여 그 사명을 이루셨던 것 처럼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