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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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수) 행전3장_성령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능력
- 느헤미야강
- 2019-04-17
- 505 회
- 2 건
앞에서 누가는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다”(43절)고 했는데,
그 중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문 곁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을
베드로가 온전하게 해 준 것입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1절)이었습니다.
요한과 함께 성전문을 지나가던 베드로가
“우리를 보시오!”(4절) 하고 그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그 사람이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자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6절)하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무모 하고도 위험한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은 그 즉시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온전하게 된 후에 그는 난생 처음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8절)습니다.
그는 육신적인 장애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회복된 것입니다.
율법 규정에 따라 그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율법에 의해 차별 받던 사람들을
회복시켜 내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성전 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놀라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11절)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장소에서
그들에게 설교를 합니다(12-28절).
그는 먼저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12절).
그러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인데,
그들이 그분을 죽게 했다고 책망합니다(13-15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 내셨습니다.
지금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16절).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무지합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예언 하셨고 그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여 예수를 죽게 했는데,
그들도 그 믿음이 없어서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을 의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19절)라고 촉구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성경의 예언대로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21절)
“하늘에” 즉 하나님의 차원에 머물러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전 모세를 통해 주신 예언(신 18:15, 19절)과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무엘 이후로 나타난 많은 예언자들이 그 사실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자기의 종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28절).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성령께서는 때로 우리를 억압하는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게 하기도 하고,
우리가 인습에 젖어 당연히 생각하던 차별과 장벽을 넘어서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걸하던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장애에 갇혀 있던 그 사람은
베드로를 통해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함을 얻습니다.
그가 베드로에게 기대했던 것은 몇 푼의 돈이었는데,
성령께서는 그에게 온전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온전한 치유를 얻은 그는 가장 먼저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육신적인 장애보다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영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타고난 장애로 인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보고 싶었던 궁극적 구원입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졌던 관계를 벗어나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 등지고 살아가던 상태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을 회복하실 때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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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민목사 19-04-17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3:6
학생들과 함께 깜덴 공동체 필리핀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깜덴 공동체는 도시의 극빈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네이다. 이들의 삶을 어루만지며 복음전도하는 선교사님을 돕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몇날 몇일을 집에서 지내는 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우리를 집으로 들어가게 해 주었다. 너무나 좁은 단칸방 쪽방에서 너무 연약한 아기는 곤히 자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선교지 교회 장로님이 필리핀 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에게 말씀과 기도를 부탁하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성령님께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시길 기도했고 이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나의 삶은 무기력하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 이 가정과 함께하여 주시고 이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것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의 삶속에서 무엇인가를 전해야 한다면 나는 예수 밖에 전하지 않겠다. 그리고 그것 밖에는 내가 가진 것이 없기를 소망한다. 오직 예수!! -
- 이형원전도사 19-04-20
-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3:8)"
오늘 말씀에는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한 장애를 가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나면서 부터 걸을 수 없었습니다. 신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걸 하는 것
말고는 그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성전 미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장애가 치료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를 통하여 그는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걸어봤고 뛰어봤을 것입니다. 그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했던 일은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었습니다.
삶의 가장 큰 문제와 고민이 해결되었을 때 그를 붙잡고 있던 질병으로 부터 나음을 얻었을 때
그가 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주인공은 베드로와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인공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제자들이 다시 한 번 사람 앞에 주목받게 하셨고 또 예수님을 믿는자
들을 더하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기쁜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찬송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또한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기쁜일과 어려움에 집중하기 보다 그 일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보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