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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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0(금) 멀리 계시는 듯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2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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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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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3장 23–24절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자신의 임재와 

통치의 실재를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묘사하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부재의 존재로 

오해한 시대에 대한 교정이자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가까이 계신 분이며, 

인간이 도무지 숨을 수 없는 곳까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이 주어진 시대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유다는 이미 내부적으로 부패했고, 바벨론의 위협이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평안하다, 재앙이 없을 것이다”라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마음의 생각을 따라 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속셈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거짓 예언으로 백성을 미혹시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이 아니냐?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겠느냐? 

나는 하늘과 땅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인간이 만든 거짓된 신 개념을 무너뜨립니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성전 안에만 계신 분,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만 임하시는 분으로 제한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공간과 제도, 인간의 인식에 갇히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가까이 계신 동시에 멀리 계신 분, 즉 내재하시면서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존재하시며,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곳에서 역사를 다스리십니다.

 

“가까운 데 하나님”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친밀한 임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 외로움, 두려움 한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울부짖을 때, 우리가 묵묵히 견딜 때, 그 자리에 이미 하나님이 계십니다. 

반면 “먼 데 하나님”이란 표현은 하나님이 인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보시며,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초월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도 일하시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큰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은 

인간의 숨김 본성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아무리 경건한 외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더라도, 

그 내면의 탐욕과 위선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심판의 선언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고통받는 자, 억울한 자, 외로운 자에게는 

깊은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며,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은 

창세기의 창조 신앙을 다시 불러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바깥에 계신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 안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존재를 지탱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다는 것은,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우리가 일하는 곳, 

우리가 고통당하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정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느껴질 때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임재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그분을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따라서 신앙이란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붙드는 의지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 충만하시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 

신앙은 숨김에서 벗어나 투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진짜 경건은 감추는 삶이 아니라 드러내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히 서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립니다. 

숨김 없는 고백, 진실한 회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이 

바로 임재의 신앙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편재는 심판이자 위로입니다. 

불의한 자에게는 피할 곳이 없다는 선언이지만, 

고난받는 자에게는 어디서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감옥의 어둠 속에서도, 병실의 침대 위에서도, 

삶의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인간의 절망을 은혜의 자리로 바꾸는 능력,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지만, 

예레미야는 그들의 착각을 깨뜨립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까이 계시며, 

세상을 채우고 계신 분입니다. 

오늘의 우리도 때로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을 때, 

마치 그분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더 깊은 일하심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세밀하게 일하고 계시며,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에 그분을 더 깊이 찾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신앙은 투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감출 것이 없는 삶, 

그 투명함이 곧 평안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쁨 속에도, 우리의 눈물 속에도, 우리의 침묵 속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기에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에 영원을 바라볼 희망을 얻습니다.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이 아니냐…

사람이 은밀한 곳에 숨을 수 있겠느냐…

나는 하늘과 땅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3–24)

이 말씀은 죄를 깨뜨리는 빛이며, 고통 속에 있는 자를 일으키는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듯하지만, 언제나 여기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