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18(월) 마가14장_여인처럼
- 느헤미야강
- 2019-02-18
- 492 회
- 1 건
1. 1-11절: 베다니에서
이제 마가복음은 주님의 수난기사로 들어갑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동안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일주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시작에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이 이 절기와 직접 연관이 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생명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이야기는
비로소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예시합니다.
이 명절 기간에는 예루살렘에 너무나 많은 순례자들이 와 있었고
그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편에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명절에는
예수를 죽이는 것을 삼가려고 생각했었습니다(2).
그러나 때와 시간은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한 여인이 주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3~9).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일 생각만 하고 있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허비하여 그 사랑을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측근인 제자들 역시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계산만 하고 있지만,
그리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인하여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지만(10~11),
오로지 한 사람, 이 여인만이
주님의 죽으심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주님께서 죽으실 것을 알고
그 죽으심의 의미까지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주님은 죽으심 후에 복음이 전파될 것을 예상하셨고
이 여인의 이야기도 전해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때를 알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이 여인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2. 12-31절: 유월절 식사
‘무교절의 첫 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는 표현은 애매합니다(12).
보통 유월절 전날 양을 잡고 유월절 저녁에 식사를 했는데
(유대인의 날 계산은 저녁에 시작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사람들은 유월절을 무교절 첫날이라고 말하는 식으로
거의 유월절과 무교절이 하나의 절기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마 주님은 이미 유월절 식사를 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준비시켜 놓으신 듯 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당국은 주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시국에
주님께 은신처를 제공하는 사람은 분명히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식사 자리에서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18~21).
그리고 주님은 성만찬을 제정하시는데,
이것은 제자들로 대표되는 신약의 교회와 새언약을 맺으시는 의식이었습니다.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7).
이는 스가랴13:7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만큼은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후의 사건은(66~72) 신앙이 말처럼 쉽지 않고
우리도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32-52절: 겟세마네에서
주님은 식사자리를 떠나 겟세마네로 가시는데,
특별히 세 제자,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기도처로 가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심한 괴로움으로 기도하시지만,
세 제자는 육신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계속 졸기만 합니다.
때가 되어 주님은 가룟 유다를 앞세운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히시나,
베드로는 다시 신앙이 아닌 호기로 칼을 꺼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베어버립니다.
주님은 이것이 믿음의 행위였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결국 다(베드로 포함)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또 한 사람의 연약한 모습이 특히 마가복음에만 소개되는데,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 하나만 걸치고 주님을 따라오다가 붙잡히자
너무 겁이 나서 베 홑이불도 버려두고 도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자신이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4. 53-72절: 대제사장 관저에서
예수님은 그 밤에 공회로 끌려가사 심문을 받으시지만,
주님에 대한 각종 증거들이 일치하지 못해서 효과가 없자
주님께 직접 질문을 하게 되는데,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말에 대해서 주님은 긍정하셨고
“인자가 전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덧붙이심으로
십자가로 가는 길을 스스로 열고 계십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님은 수동적으로 끌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주도적으로 조정하십니다.
그 때 안뜰 아래쪽에서 지켜 보고 있던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이라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여 부인합니다.
이후 예수님의 예언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는 것으로 14장이 마무리 됩니다.
묵상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은 온통 연약함 투성입니다.
호언장담하는 베드로도 그렇고
모든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 연약한 여인의 행동이 빛납니다.
주님은 그녀의 행위를 믿음의 행위로 여기셨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께 자기의 전부를 드렸습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측근이라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다는 것도 아니며,
복음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위해서 자기를 드리는 것임을
이 본문은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당신은 어느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 이전글 2.19(화) 마가15장_십자가에서 왕의 대관식을 하다 19.02.19
- 다음글 2.16(토) 마가13장_그런즉 깨어있으라 19.02.16
-
- 김성민목사 19-02-19
-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14:3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시몬에게 식사 대접을 받았다. 또한 한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나병환자를 멀리 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나병환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또한 하와의 타락 때문인지 고대근동시대의 가부장적시대의 산물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귀히 여김은 받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지금이야 사람의 귀천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사람의 귀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사람을 만나면 불쾌해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만 하는 여인을 만나면 부정하다고 멀리한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예수님은 단지 그들과 함께 하신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셨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라 딸이라 불러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이 정하다 하는것을 사람이 부정하다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 딸이라 불러주신 한 형제, 자매를 더럽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모습은 달라도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수님께서 그리 하셨다면 마땅히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나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 함께하여 주시옵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