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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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목) 눅7장_은혜 받은 증거는
- 느헤미야강
- 2019-02-28
- 469 회
- 2 건
1. 1-17절: 두 가지 이적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사건과(1~10)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11~17)은
주님의 은혜가 아무리 백부장과 같이 지위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의 신임을 얻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방인이었던 사람에게나, 비참한 삶을 벗어날 길이 없던
당시 과부로서 외아들까지 잃어버린 여인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부장은 자기의 재산을 기부하여 가버나움에 회당을 지은 인물로서
유대인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유대인의 장로들이 대신
예수님께 나아와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장로들은 비록 백부장이 이방인이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합당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4).
주님께서 그 집에 거의 도착하실 무렵,
백부장은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종들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거나 자기가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냥 말씀만으로 종을 고쳐달라고 청하였습니다(6~7).
주님은 그의 청대로 종을 고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9).
주님은 이어 나인성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과부의 죽은 독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보시고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께 간청하지도 않았지만,
주님은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의 구하지 않은 소원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자격을 갖추거나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참 놀랍습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이 무슨 설명을 달 수 있을까요?
인간이란 그가 어떤 지위와 권세를 가졌든지,
어떤 처지에 놓였든지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오늘 내가 바로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입니다.
2. 18-35절: 세례 요한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진짜 메시아신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것을 확인하게 하였습니다(18~23).
주님은 당신의 하시는 일들이
이사야 61:1~2의 성취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메시아이심을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의심과 불신은 다릅니다.
“의심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의심은 반드시 그 사람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이다”라고 한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이 광야에 나갔던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요한을 보러 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드러운 옷 입고 궁궐에 있는 사람이 아닌
약대 털옷을 입은 거친 사람인 요한을 보러 갔었습니다.
그는 선지자였습니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이고
주님을 직접 보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요한의 때까지
요한보다 나은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다 알고 깨닫고
믿게 되는 세대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이렇게 의심하는 세례 요한보다도
더 나은 은혜를 입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끝까지 세례 받기를 거부했던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을 향하여
주님은 피리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도무지 장단을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
그러나 참 지혜는 그 지혜에 복종하여 지혜를 따르는 자들인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그 옳음이 이미 입증되고 있습니다(35).
3. 36-50절: 죄와 사랑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였다고 칭찬을 받은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사건과는 다른 사건일 것입니다.
주님은 시몬이란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고
이 여인은 ‘죄인인 한 여자’라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창녀와 같은 삶을 산 여인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당혹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강렬하게 대조되는 두 사람은 바로 시몬과 여인입니다.
주님은 두 사람의 태도를 비교하심으로써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을 더 사랑한 사람은 여인입니다.
그가 그렇게 주님을 사랑한 것은 저가 더 많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주님은 믿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50).
바리새인 시몬은 자기가 주님을 대접해서
식사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이런 인식과 자세 때문에 그는 은혜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을 만한 자격이 없어서 발에 향유를 부었고,
예수님의 머리가 아닌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여인 자신은
자기 스스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주님은 이 여인을 높이셨고 칭찬하셨습니다.
은혜는 이런 자에게 주어집니다.
묵상.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바리새인 시몬처럼
자기의 옮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주님을 대접하고 있다거나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드리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겸손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받은 자들은 하나 같이 말이 없습니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 설 자격 조차 없는
이방인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나인성 과부도 한 마디 말이 없습니다.
죄인인 여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백부장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인물이었고,
여인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는가 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입니다.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높이는 자를
결코 주님께서 높이시지 않습니다.
나는 은혜 받은 자인가?
나에게는 은혜 받은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나는 바리새인 시몬인가,
아니면 백부장이나 죄인인 여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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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3-01
-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7:13)"
예수님께서 나인성에 가셔서 그 곳에서 한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어
사람들이 그 죽을자를 메고 나오는 모습을 보게된다.
이 과부는 예수님을 찾아가 그 아들을 살려달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시며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은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부를 위로했을 뿐 아니라 그 아들을 살리심으로 그 과부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주님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함을 생각해 보게된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며
그 슬픔 속에 있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어지길 원한다.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 처럼 나도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 가운데 세워지는데 쓰임받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김성민목사 19-03-01
-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눅7:23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족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많은 분들이 시험에 들어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어느 권사님이 나 한테 이렇게 말해서 시험 들었어, 이렇게 행동해서 시험들었어,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시험들었어,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해서 시험들었어” 정말 많은 이유들 때문에 시험에 든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하다가 교회를 떠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믿음을 잃는 것은 누구의 복을 포기하는 것인가? 결국 자신의 복을 걷어 차는 것이다.
주님의 복음을 감당하다 보면 정말 많은 사단의 공격을 받는다. 그 때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순간을 이겨내야 한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약속해 주신 우리 주님이 계신데 그 사실을 매번 간과한다. 부디 오늘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또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