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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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토) 마태17장_체험보다 중요한 것
- 느헤미야강
- 2019-01-19
- 470 회
- 1 건
1.
1-13절: 환히 드러난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빌립보의 가이사랴에서 더 북쪽으로 가셔서 어느 산에 이르십니다.
그리고는 세 제자만 데리고 산을 오르십니다.
기도하러 올라가신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를 기도했을까.
세 제자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을 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홀연히 나타나 대화를 나눕니다.
한 순간에 그곳은 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상태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 분을 위해 초막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세 사람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5절).
엿새 전에 고난 받고 죽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들었던
베드로에게는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에 앞서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명하게 보여 주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강력한 사건이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여 주셨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린 하나님 말씀에 그들이 두려워 땅에 엎드려 있을 때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고 산을 내려 오시면서 당신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9절).
부활로써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 보기 전에는
이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세 제자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합니다.
그러자 의문이 듭니다.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라고 답하십니다.
2.
14-20절: 믿음이 아니고는
예수님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홉 제자와 무리들을 다시 만나십니다.
그 때 귀신에 사로잡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을 둔 사람이
예수께 와서 고쳐 주시기를 청합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부탁했는데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17절)라고 탄식하십니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두고 하신 탄식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느냐고 묻자(19절),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십니다(20절).
믿음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중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능력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그 능력에 나를 접속시키는 것입니다.
3.
22-23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갈릴리로 돌아 오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암울한 사건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그는…그를…그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메시아의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당신과 온 세상에 대한 영원한 왕권을 전해 받고 통치하게 될
“인자”와의 거리를 생각했기 때문이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다”(23절)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도 그랬던 것(16:21)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사흘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만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제는 그 말씀에 반박하거나 대들 수도 없습니다.
그분 말씀대로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데, 정
말 인정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4.
24-27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가버나움에 이르렀음 때 성전세를 거두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모든 성인 유대인은 한 해에 반 세겔
(성인 노동자의 이틀 품삯)의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르침의 기회로 만들곤 하시는데,
이번에도 당신 자신에 대해 가르치는 기회로 삼습니다.
왕이 자녀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은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쓸 데 없는 잡음을 만들 이유가 없으니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돈이 없었는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돈을 구하여
성전세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하나님은 때로 당신이 계시다는 사실을 신비한 방법으로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불쑥불쑥 보여 주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 제자가 경험한 것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시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덜 극적이고 덜 분명한 방식으로 드러내십니다.
믿음이란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알아 보고
그분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분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로 흘러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황홀경을 사모하고 추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의 초점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체험을 주신다면
그것도 역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따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홀한 체험 한 번 없었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체험은 우리에게 필요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 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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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1-22
-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귀신들린 아이였다.
그 아이를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
왜 자신들은 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그것의 궁금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신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일은 하나님께서 일하게
하시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내려놓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확신하고 신뢰하는 것
이러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내 삶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거 가시길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을 믿는 나의 믿음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주심을 인정하고 그 분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