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24(목) 마태21장_믿음은!
- 느헤미야강
- 2019-01-24
- 498 회
- 1 건
1.
1-11절: 나귀를 탄 왕
예수님과 제자들은 드디어 예루살렘 동편
올리브 산에 있던 벳바게라는 마을에 당도하십니다.
그곳에 잠시 여장을 푸신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맞은 편 마을로 가서 나귀와 그 새끼를 데리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스가랴 예언자의 예언(9:9)을 이루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말씀대로 나귀와 그 새끼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자 예수께서 올라타고는
예루살렘 동편에 있던 성문을 향하십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동문을 통해 들어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무리는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8절)습니다.
그것은 옛날 마카비 형제가 희랍인들을 대항해
혁명을 일으켰을 때 무리가 했던 행동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카비처럼 로마를 상대로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무리는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셨습니다.
성인 남성이 나귀를 탄 것은
전사의 모습이 아니라 광대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예언대로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화려한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무리는 자신들의 기대대로
예수님이 혁명 전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는 나귀가 말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2.
12-22절: 성전에 임하신 영원한 성전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체 바깥으로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제사에 쓸 짐승을 파는 사람들과
로마 화폐를 성전용 화폐로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심한 듯 그들을 향해 진격하여 매매 행위를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십니다.
성전이 더 이상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행동으로 인해 성전 제사는 잠시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의도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성전 제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의미가 없으니 중단하라!”
그 때 성전 광장에서 구걸하고 있던 장애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습니다(14절).
바로 그것이 성전에서 일어나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성전, 영원한 성전으로 그곳에 임하셨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율법학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라고
외치는 모습을 가리키며 예수님을 책망합니다.
만일 로마 경비병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곧바로 군대를 동원하여 잔인하게 진압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제 때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최대 관심사는
정치적인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편 8편 2절을 인용 하시고는 돌아서십니다.
베다니에서 밤을 지내시고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실 때 길가에 있던 무화과나무를 보십니다.
아직 식전이었기에 무화과 열매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잎이 무성한 그 나무로 가십니다.
하지만 그 나무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형식만 무성한 성전과 유대교를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와 사랑과 거룩의 열매는 없고
제사와 율법과 계율만 풍성한 성전의 현실이
그 무화과나무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셨고(19절)
그 나무는 곧 말라 버렸습니다.
그것은 형식만 무성한 성전이
심판 받게 될 것임을 예언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당장 말라버렸을까?”(20절)라고 묻습니다.
사실 그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예수님은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까?”였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신기한 일들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초점 잃은 질문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친절하게도 대답해 주십니다.
구한 대로 이루어 주실 줄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21-22절).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그분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3.
23-46절: 순종의 열매
예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장로들이 찾아와
“무슨 권한으로”(23절)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인가 묻습니다.
예수님은 직답을 피하시고 요한의 세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무리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모르겠다”고 답하시자 예수님도 답하지 않으십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입장을 정하고 왔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대꾸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무리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어느 날 두 아들에게 동일한 심부름을 줍니다.
한 아들은 “예”라고 답하고는 하지 않았고,
다른 아들은 “아니오”라고 답하고는 나중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은 “아니오”라고 대답했어도
나중에 순종한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하늘 나라의 복음 앞에서는 귀를 막고 등 돌린
대제사장, 장로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허위를 드러냅니다.
반면, 세리와 창녀들은 하나님께 “아니오”라고 말한 아들처럼 살았지만
지금 하늘 나라의 복음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33-39절).
이번에도 포도원 주인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비옥한 포도원을 만들고는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납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 주인은 세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종들을 거부하고 배척하고 박해합니다.
참다 못한 주인은 아들을 보냅니다.
농부들은 그 아들을 환영하기는커녕 그를 죽여서
그 포도원을 영원히 소유할 음모를 꾸미고 그대로 실행합니다.
이 이야기 끝에 예수님은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0절)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그 악한 농부들을 심판하고
신실한 다른 농부에게 포도원을 맡겨야 한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23절을 인용 하시면서
선택 받았던 이스라엘은 버림 받을 것이며
그동안 버려졌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건축자들에게 버림 받은 돌(42절)은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하고,
선택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돌은 많은 사람의 운명을 가를 것입니다(44절).
대제사장으로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와
포도원 주인에 관한 이야기가 자신들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예수님을 체포하려 했지만, 무리가 에워싸고 있었고
그들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에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민족”(43절) 즉 교회입니다.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하여 실패했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계약 백성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개인의 삶에서 열매를 맺고 있으며,
오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눈 뜨고 회개하여 그 나라를 살고 있다면
그 증거가 눈빛의 열매, 말의 열매 그리고 행실의 열매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잡혔다면 이웃과의 관계로
그 결과가 드러나야 합니다.
내면이 정결해졌다면 그 증거가 외면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진실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라면
일상 생활에서 그분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교회는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과연 내 믿음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나의 묵상은 어떤 열매로 그 증거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교회로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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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1-26
-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마21:12)"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보시고 그들을 쫓아내고
그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장사하는 그 자들은 예수님의 눈에 보기에는
강도들과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잘 못된 의도로
들어와 있는 것들을 없애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심으로 성결을 정화하셨다.
내가 몸된 성전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안에 있는 것이 때로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된다.
하나님의 성전에 거룩하지 않은 것이 가득차게 될 때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게 하신 것 처럼 내 마음도 깨끗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언제나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더러움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깨끗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