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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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토) 마태23장_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 느헤미야강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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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예로 들면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십니다(1~1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하는 것이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5).
그들에게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윗자리에 앉는 것이 중요했고,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이 중요했으며
랍비라고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6~7).
그들은 말은 바로 했지만,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3~4).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인정해주셔야지,
사람이 높여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헛되다는 것입니다(12).
그러므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결국 하나님이 낮추실 것입니다.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시는데
일곱 번에 걸친 ‘화있을진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의 책망과 저주의 핵심은 한 마디로 ‘외식하는 태도’ 입니다.
그들은 천국 문에 서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문을 막아 다른 이들도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13).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선교에 열심을 냈었는데,
그렇게 수고해서 얻은 사람들을 결국은
지옥 자식으로 만든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15).
이것은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유대교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금한 까닭에
사람들은 성전을 두고 맹세하곤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들이 늘어나서
나중에는 성전의 금, 제단의 예물로
맹세하는 경우까지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의도를 알기는 아는 것일까요?
참으로 그들은 영적 소경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은 율법을 너무나 세분화하여
아주 작은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철저하게 지켰는데,
반면에 진정한 율법의 의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곤 했습니다.
율법은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작은 양념의 항목들에서도 철저하게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은 그래서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시키지 않은 것은 그렇게도 열심히 하면서
결국 율법의 더 중요한 것 즉 율법의 정신인
정의와 인애와 믿음은 저버리고 있다고 하십니다(23).
이것은 작은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약대는 삼키는 태도입니다(24).
이들의 문제는 속(마음)이 아니라 겉(모양)을 중요히 여겼습니다.
주님은 먼저 속이 깨끗해져야
겉이 따라서 깨끗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26).
이것은 놀라운 신앙의 원리입니다.
이들은 백성들에게 거절당하고 죽은 선지자와
의인들의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면서
자기들 같았으면 조상들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은 조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은 이 대목에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독설을 발하십니다(33).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지옥의 판결 뿐입니다.
구약의 순교자, 아벨부터 스가랴까지 흘린 피가
다 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선지자들이 아니라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제 곧 이들에 의해서 붙잡히시고
고난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죽으실 것입니다.
이런 직접적 언사들은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아주 모질게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동시에 당신의 때를 정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이 백성을 끝까지 품고자 하셨지만,
그들이 그 품을 박차고 나가므로 결국 심판을 받아
그들의 집(성전을 의미한다)이 황폐하고 버린 바 되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야 그들은 주님을 다시 볼 것입니다(39).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얼마나 많은 목사와 선교사
그리고 장로 등 교회의 지도자들과 직분자들이
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게 될지 두렵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본질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도전입니다.
우리는 속(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깨끗이 하는가,
아니면 겉(모양)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데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산다면
속(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에 관심을 둘 것이고
우리에게 사람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겉(모양)을 단장하느라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나는 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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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1-29
- "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23: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비판의 말씀이 이어진다.
이 자들의 가장 큰 잘 못은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다.
또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경건의 모습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써 혹은 종교 지도자로써 자신이
온전히 행하지 않으면서 혹은 잘 못된 의도로 행하면서
다른 자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악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여 설교하는 자리에 서야 하는 나에게도
이러한 잘 못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내가 설교하는 그 내용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는가?
아니면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처럼 교인들에게는 그렇게 실천하라고
강요하면서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 것이라고 반복하여 이야기 하신다.
나의 모든 순간이 진심이길 원한다. 겉으로만 혹은 보이기 위하여 행동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그리하여 말로만 부르짖는 말씀이 아닌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말씀을 전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