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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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마태25장_주님 오실때까지 어떻게 살것인가

  • 느헤미야강
  •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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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5장 주님 다시오실때까지 어떻게 살것인가

 

1. 1-13: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예수님은 앞에서 종말의 때에 대한 가장 좋은 대비는

늘 깨어 매일을 신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늘 깨어 신실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몇 가지 이야기로 가르치십니다.

 

이 이야기에는 열 처녀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1) 나갑니다.

열 처녀 모두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 절반은 어리석고 나머지 절반은 슬기로웠습니다.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해 두었는가에 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에 따라 신부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고

머지 않아 신랑이 오게 될 것입니다.

열 처녀는 신랑을 맞아들여 잔치집으로 인도하고

나중에는 신방으로 인도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밤이 늦도록 신랑이 오질 않습니다(5).

그러자 신랑을 기다리고 있던 열 처녀 모두 졸음에 빠졌습니다.

한 참 후에 신랑이 도착했고,

처녀들이 깨어 보니 등불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으로 등불을 채웁니다.

반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당황하여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섯 처녀들 마저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제서야 기름을 사러 나갔고,

그 사이에 잔치집 문은 닫혀 버립니다.

나중에 그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열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신랑은 매몰차게 외면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넉넉한 믿음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늘 일어날 수도 있지만

또한 오랜 후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믿음의 사람들은 환난을 당할 수 있고,

그 환난은 상상 이상으로 심하고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겨낼 만한 충분한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아직 여유가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신랑이 보여준 냉담함은 때가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2. 14-30: 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신다

이번에는 거부의 주인과 종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한 달란트는 성인 노동자가 2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하여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만들 수 있는 거금입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지금으로 하면

큰 회사 몇 개를 살 수 있는 거금을 받은 것입니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돈으로 사업을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사업을 통해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 보고를 받고 주인은 두 종을 동일하게 칭찬해 줍니다(21, 23).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돈을 땅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은 그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여 그에게 준 돈을 빼앗고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습니다.

 

이 비유도 역시 재림의 날까지 매일 신실하게 살라는 교훈을 전합니다.

종들이 받은 돈 액수가 차이 나는 이유는

각 사람의 능력”(15)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달란트는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은사

그리고 맡겨진 책임과 사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능력과 은사와 개성과 성향에 따라

다른 책임과 사명을 맡기십니다.

인간이 볼 때는 누구는 큰 사명을 받았고

누구는 작은 사명을 받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 같습니다.

모두가 그에 맞는 적당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동일한 칭찬을 하신 것에서 그 사실이 드러납니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만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최선을 다하지 못하여

세 달란트밖에 남기지 못했다면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을 더 칭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며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24-25)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을 완고하고 냉정하며 비정한 분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크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여 안전하게 가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기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최선을 다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서 원금을 잃었다 해도

하나님은 칭찬 하셨을 것입니다.

 

3. 31-46: 다른 이의 필요를 섬기는 믿음

예수님은 종말에 대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날이 이르면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

영원한 왕은 사람들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가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34)입니다.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34)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의 예언대로

그 영원한 나라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다시 오십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그 나라를 상속받는 이유는

이 땅에 있을 때 예수님의 필요를 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35-36).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예수님의 필요를 채워 드렸느냐고 반문합니다(37-39).

그러자 예수님은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40)이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내 형제자매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든 안 믿든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의미가 이 말씀에 들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첫 번째 의미를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사람이 드러내야 할 차별성입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희생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해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하시며

악마와 그 졸개들의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41)고 하십니다.

그들이 인자의 심판에 대해 부당하다고 항의하자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4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를 두고 그렇다면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론을 밝히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고 그분의 뜻을 안다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피고 채우는 일에

마음을 쓰고 물질을 사용해야 옳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해야 하고,

믿음의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건가 것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의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묵상:

예수님의 재림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하면

전설과 신화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오지 않은 재림이 언제 오겠느냐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느슨하게 만들고

자신의 사명에 게으르게 하며 이웃을 함부로 대하고

이기적인 욕심만을 위해 살게 만듭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도,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왼편에 선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었으나 부족했고 느슨했으며 안이했고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며,

한 번 받은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는 교리 뒤에 숨어서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들을 통해 매일의 삶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지만,

구원할만한 믿음은 삶의 태도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환난을 당하며 끝까지 견디는 인내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신실함 그리고 이웃의 필요에 대한

민감하고도 민첩한 응답에서 믿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믿음의 생명을 드러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30
      "각 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25:15)"

      오늘의 말씀에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자주 들었던 비유 중에 하나인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특별의 오늘의 말씀 가운데 나에게 다가온 것은 종에게 달란트를 나눠 줄 때 그 재능
      대로 나누어 주었음이다.

      그 종의 재능에 따라 그 분량에 맞게 그 주인은 종들에게 각 각 달란트를 나눠줬다.
      하나님께서도 각 사람에게 그 분량에 맞는 달란트를 주셨다.
      그럼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이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여 그 달란트를 주신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나의 달란트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한다.
      내가 받은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받은 것과 비교하여
      남들보다 낫다고 여기면 교만함을 남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면 열등감을 가진다.

      그리고 때로는 불평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재능대로 그에 합당한 달란트를 주신 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 바로 그 것이 나에게 최선의 것이며
      또한 그것을 통해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주신 것을 주목하기보다는
      나에게 주신 달란트와 사명에 주목하여 나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되게 해나가는 주님의 종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