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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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수) 마태26장_우리가 어쩌든 하나님의 계획대로

  • 느헤미야강
  •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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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6: 다가오는 밤

예수께서는 곧 시작될 유월절에 당신이

넘겨져서”(2)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유대인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줍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님을 제거할 모의를 합니다.

그들은 만일에 일어날 소요 사태를 염려하여

유월절에는 피하기로 했습니다(5).

하지만 그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유월절 전 날에 예수님은 올리브 산에 있던

베다니에서 묵으셨습니다.

그곳에 나병 환자였다가 예수님께 치유 받은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동안

한 여자가 향유 병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것은 성인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의미 없는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그 여인은 다만 사랑하기에 가장 귀중한 것을 드리려 한 것 뿐인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행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11)이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너희가 늘 해야 할 일이지만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때로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그 시점에서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의 행동이 복음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칭찬하십니다(13).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시는 동안 가룟 유다는 은밀히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밀약을 합니다.

은돈 서른 닢”(15)은 율법이 정한 노예의 몸값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이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예수님을 깎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처음부터 돈에 목적을 두지 않았기에

그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2. 17-30: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무교절 첫째 날”(17)은 오늘로 하면 목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날 저녁에 가정마다 가장의 주도로

유월절 식사를 합니다.

옛날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처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었기 때문에 무교절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지시로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유월절 식사를 준비합니다.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동안 예수님은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넘겨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21).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모두 불안해졌습니다(22).

모두가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죽는 것이니 괜찮지만,

당신을 죽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

유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졌다 해도

그의 죄는 용서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그 말에 찔렸던지

선생님, 저는 아니지요?”(25)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고 답하십니다.

겉으로는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렇다는 암시를 담고 있는 대답입니다.

 

이윽고 예수님은 정해진 전통을 따라 유월절 식사를 시작하십니다.

빵을 들어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26)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이 그들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28)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예레미야가 예언 했던

영원한 새 언약’(31:31)이 맺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 하셨는지를 나중에서야 깨닫습니다.

그렇게 유월절 식사를 마친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으로 가십니다.

 

3. 31-56: 겟세마네에서

올리브 산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스가랴 137절 말씀을 인용하여

제자들이 그 밤에 당신을 모두 버리고

달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31).

또한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난 후에는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2).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33).

그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날 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당신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34).

베드로는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장담합니다(35).

그들은 강한 사람이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도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올리브 산과 예루살렘 성 사이 깊은 계곡에

겟세마네라고 불리는 우거진 숲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당도하신 예수님은

여덟 제자(가룟 유다를 제외한)를 그곳에 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셔서 기도하십니다(36-37).

그 때 예수님은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37)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태연히 말씀하시던 분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당신이 마셔야 할 진노의 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담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깨어 있어서

함께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신 다음

더 깊은 곳으로 가셔서 따로 기도하십니다(38).

 

예수님은 홀로 오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다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도의 핵심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진노의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다른 길이 없으면

그 길을 가겠다고 받아 들이십니다(39).

 

한 참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모두 곯아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을 깨우시고는 다시 홀로 기도하고 오셨는데

그들은 또 다시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오랜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와서 깨워 일으키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제 남은 시간은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이르렀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5-46)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기도해야 할 때 안일하고 나태하게 지내면

돌이키지 못할 때가 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기에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를 몰랐고

그랬기에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깨어 있지 못했기에 일이 다가왔을 때

그들에게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두려움과 공포로 기도를 시작하셨지만

기도를 마쳤을 때 진노의 잔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 제자를 데리고 다른 제자들에게로 오십니다.

그 때 가룟 유다가 성전 경비경들을 데리고 다가옵니다.

어둠 속에서 예수님께 다가가

유대식으로 입을 맞추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것은 성전 경비병들과 미리 짜 놓은 암호였습니다.

그러자 경비병들이 달려 들어 예수님을 결박합니다.

그 때 제자들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들어 그들을 향해 내리쳤고

그로 인해 그들 중 하나의 귀가 잘려 나갑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지 하시면서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5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경비병들과 싸워 이길만한 충분한 능력이

당신에게 있지만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순순히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54).

경비병들에게도 자신이 무력하게 결박 당하는 것은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56).

그 때 제자들은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4. 57-75: 의회에서

당시 유다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 황실은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 했지만

산헤드린이라는 자치 의회에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해 주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 사이의 문제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해결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사형만큼은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체포된 예수님은 가야바에게로 이송되었는데,

예수님이 도착했을 때 의회가 소집되어 있었습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몰래 가야바 법정까지 따라 왔습니다(58).

그는 정체를 숨기고 하인들 틈에 끼어

되어가는 일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의회원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죄를 찾던 중에

두 사람의 증인이 나서서 성전에 대해

모독적인 말을 했다고 증언합니다(61).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서 계셨습니다.

가야바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63)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말하였소”(64)라고 답하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 것은 맞지만

가야바가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아니기에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로부터 당신들은,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64)라고 말합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인자에 대한 예언이

곧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가야바는 지상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온 우주의 영원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이 대답을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합니다(65-66).

온 의회는 가야바의 해석에 동조하여 사형을 결정합니다.

사형수로 결정되자 의회원들은 모욕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67-68).

 

그 때 하인들 사이에 끼어 지켜 보고 있던 베드로에게

하녀 한 사람이 다가와 그의 정체를 폭로합니다(69).

베드로는 반사적으로 부인합니다.

위기를 느낀 베드로는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대문 가까이로 옮겨갑니다.

그러자 다른 하녀가 그를 알아 봅니다.

베드로는 다시금 부인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그의 말투가

갈릴리 억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의혹을 부추깁니다.

그 때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74)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함으로써 자신이 그분과 상관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멀리서 닭이 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이 생각 나

바깥으로 나가 몹시 울었습니다(75).

 

묵상:

예수님의 마지막 밤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인간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과 섭리 안에서 진행됩니다.

인간사만 바라보면 인간의 악행과 실수와 사고가 엮여

역사가 만들어 지는 것 같지만,

그 위에 거대한 손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자유 의지를 따라 선택하고 결정해 갑니다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분별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려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행과 실수까지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죄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쩌든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따라 사느냐,

거슬러 사느냐에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에 충실하려 하셨던 분이고,

가야바와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선택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 살려 했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도 약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깨어진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셔서

당신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2-01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12)"

      향유는 매우 값 비싼 것이다. 쉽게 누군가에게 줄 수도 또 쉽게 사용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 향유 한 옥합을 그의 머리에 부었다.
      이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여인의 행동을 비난하며 그것을 허비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이 일은 예수님의 장례를 나타내는 사건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예수님께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고 싶어서 이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만큼 이 여인은 예수님을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으로 행한 일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더 나아가 그러한 사랑이 있기를 주님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