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4(월) 마가2장_의무가 아닌 사랑

  • 느헤미야강
  • 2019-02-04
  • 518 회
  • 2 건

본문에 기록된 첫 사건은 움직일 수 없는 중풍병자를

그와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신 일입니다(1~12).


주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셔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사람들이 가득하고 문 앞에도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되자

친구의 중풍병을 고칠 기회를 얻고자 네 친구들은

병든 친구를 침상에 눕혀 지붕을 뜯어내고

주님이 계신 아래로 내렸습니다.

주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는데

이는 중풍병자를 포함한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말입니다(5).


그리고 주님이 하신 말씀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곁에 듣던 서기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아무에게도 죄 사하는 권세가 없는데,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느꼈기 때문일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물론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씀이

더 쉬운 말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말이겠지만,

주님께서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진 분임을 드러내시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 자신을 숨기시고자 하시는 의도와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주님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오해되는 메시아상이 아니라

당신 자신께서 스스로 드러내시는 것으로써

십자가의 죽으심의 시기를 조절하신 것입니다.


두번째 사건은 세리 마태(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일입니다(13~17).

당시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던 세리의 하나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입니다.

주님은 마태를 부르시고 식사를 하시는데

그 자리는 마태와 같은 세리와 죄인들로 붐볐습니다.

이것이 서기관들에게 시비거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로써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이 사건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죄인임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우리가 가진 편견으로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거나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거나 그리스도인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회적 통념으로 점잖은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지도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배격하셨고

그러면서도 죄인을 불러 회개하게 하시는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금식의 문제를 다루십니다(18~22).

이것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것과

주님과 그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교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결혼식의 비유로 대답하시는데,

신랑이 있는 결혼 잔치에서는 즐겁게 먹는 것이 당연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때 그 잔치의 흥이 깨어지고

그때에는 금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구약적 개념으로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은 당신 자신이 신랑으로 오신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으며,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지 않는다고 비유를 덧붙이십니다.

즉 유대교의 의식에 복음의 생명력을 담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기존의 자기들의 종교적 틀 속에

주님의 말씀인 복음을 담아내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존의 사고와 사상의 틀 속에

복음을 담아내려는 시도로 성경을 읽고 대하는 것은

결국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새 마음을 성령께서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복음을 깨달을 수 없기에,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생애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안식일의 문제입니다(23~28).

주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보고서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삶은 이미 일거수 일투족 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감시 아래 있었습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율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주님은 다윗 때 다윗과 그 따르는 이들이

제사장들만 먹게 되어있던 진설병을 먹은 사건을 가리키면서

안식일의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삼상21:1~6).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한다고 여길 만큼 잘못 율법을 오용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을 주님은 풀어주려 하십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 마치 목사나 교회를 위해서,

혹 하나님을 위해서 어려운 짐을 지우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이 아닌 의무로

하나님과 그 모든 법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깨뜨리십니다.

 

나는 의무로 하나님을 섬기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섬기는가? 


이번 한 주간은 의무인가 사랑인가,

이것으로 묵상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2-05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막2:10)"

      중풍병자를 보고 예수님께서 먼저 하신 말씀은 일어나 걸어라 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먼저 그에게 하신 말씀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간다. 아픈자는 병고침을 위해
      사업을 하는 자는 사업을 위해 때로는 가족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나에게 닥친 그래서 너무나도 커 보이는
      그 문제가 아니라 내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나의 죄가 남아있다면 그래서 그 죄로 인해서 아직도 자유함이 없다면
      건강해도, 사업이 잘 되도,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된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 분께서 역사해 가시는 삶 속에 죄사함이 있고
      또한 다른 죄에 대한 유혹에서도 자유할 수 있는 줄 믿는다.
    • 김성민목사 19-02-05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고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2:14

      누군가 “인생을 살다보면 세번의 큰 기회가 오는데 잘 준비된 사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라고 나에게 조언해 준 생각이 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잘 준비된 목회자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 했었다. 그런데 정작 잘 준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가 생각하는 멋진 목사님들의 모습을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레위를 부르시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레위는 예수님이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레위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가봤자 사람들이 자신을 내어 쫓을 것이고,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수님을 포기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레위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레위를 부르셨다. 레위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포기했던 모든 것이 회복된 것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채워진 것이다. 레위에게 천금과 같은 기회가 온 것이다. 레위는 잘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단 한가지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기회를 잡았다. 그것은 바로 “순종”이다.

      진짜 준비된 사람은 “순종”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예수님,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