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3(목); 마태3장_세레받으시다

  • 느헤미야강
  •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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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3절 세례 요한의 활동

 

223절과 31절 사이에는

대략 30년 정도의 시차가 있습니다.

그 동안에 예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열두살 때의 이야기가 유일합니다.

그분의 사생애 이야기가 잊혀진 가장 큰 이유는

복음서 기록의 목적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복음서 저자들은 제한된 지면을 통해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확증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전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만 엄선해야 했습니다.

그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있었던 사건들만 해도

기록하기에 넘치고 넘쳤습니다.

그러니 사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은 제외되었고

침묵 속에 묻혔습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예수님이 보통 유대인 가정의 남자 아이처럼

가정과 회당에서 율법 교육을 받으며 자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세례 요한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앞 서 유대 광야에 나타나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선택이 무효가 되었고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포합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길은

오직 회개 밖에 없으며,

회개를 인증하는 표로써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 하면서

그분은 성령과 불”(11)로써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메시아를 통해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묵상:

세례 요한의 선포를 읽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사랑의 하나님이요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사랑과 용서는 진노와 심판의 이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의와 함께 하기에

강력한 은혜로 다가옵니다.

 

요한은 우리가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대면하게 합니다.

지금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 은혜에 맞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결국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약해야 합니다.

 

2. 14-17: 세례 받으심

 

나사렛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요한의 소식을 전해 들으셨을 때

그분은 자신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가 무리들 가운데 서서

세례를 받으려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 보고는

세례 베풀기를 사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것이 모든 의”(15)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정의”(justice)라고 번역 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일”(righteousness)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신 분이라면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에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생각 하셨을까요?

지금으로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분이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세례의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그분이 세례를 통해

죄 많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이미 요단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그분은 십자가에 오르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가

땅에 사뿐히 내려 앉는 것처럼 그분 위에 조용히 임하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현실의 사건인 것처럼 예수님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17).

예수께서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세례를 통해 죄인의 한 사람으로 내려 서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순종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묵상:

빌립보서 26절부터 1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 찬가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성부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으나

그것을 누릴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되 가장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시는

행동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순종의 제사로 인해 오늘 구원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제사로 인해 구원을 입은 이들!

그 길을 따라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이들!

그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05
      "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오 오시나이까(마3:14)"

      세례 요한은 자신의 분명한 사명을 알았고 그 사명을 충실히 이루어 나갔다.
      특별히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칫 자신이 높아지고 싶은 욕망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써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
      예수님을 드러내는데 그 모든 초점을 맞췄다.

      자신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으며 선지자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겸손해 지기는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오셨을 때 그는 자신을 낮추었다.

      우리의 삶의 목적도 주님을 드러내는 일이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기 위하여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보게된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하여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난다면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나는 조금 더 평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19년도 특별히 주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내가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럼으로 주님께는 영광이 되면 나에게는 참 평안이 넘치는 귀한 한해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