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1.4(금) 마태4장;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다
- 느헤미야강
- 2019-01-04
- 486 회
- 1 건
1. 1-11절: 광야에서의 시험
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유다 광야에 나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40일은 이스라엘 전통에서 아주 중요한 수입니다.
예수님은 그 전통을 따라 황량한 유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와 묵상을 통해 당신의 사역을 준비하십니다.
그 기간이 다 차서 심신이 지쳤을 때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사탄은 영적으로 충만할 때 더 강력하게 활동합니다.
죽은 개를 걷어 차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공략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써
사탄은 예수님이 당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오용하도록 유혹합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것이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은
모두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 하라는 요청입니다.
이 즈음 예수님은 치열한 금식과 기도와 묵상을 통해
성령으로 충만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제안을 거부하십니다.
그러자 사탄은 세상의 통치권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제안합니다.
예수님은 그것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십니다.
그분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높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묵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고,
사역 중에도 자주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기도가 이렇게 중요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기도가 필요 없다는 생각 혹은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 생각은
알고 보면 자신을 예수님보다 더 크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기본적으로 ‘속이는 자’입니다.
교활한 속임수로 우리를 속여 하나님을 떠나게
혹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그 사탄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활동합니다.
영적으로 충만할 때면 사탄의 영적 공격은 더 커집니다.
“그런 것 없다”는 것이 사탄의 가장 강력한 속임수입니다.
“나는 괜찮다” 하는 순간 속아 넘어갑니다.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개 숙이는 이가 복됩니다.
2. 12-25절: 갈릴리에서의 활동
1) 12-17절: 가버나움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다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의 부도덕한 결혼을 비판함으로 체포 당합니다.
예수님은 ‘준비자’ 세례 요한의 임무가 끝이 났으니
이제 당신 자신의 때가 왔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유다 광야에서 갈릴리로 돌아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그로써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가버나움으로 이사한 후에 예수님은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설교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이제 곧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시작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소식을 믿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통치에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알리셨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드러내셨습니다.
구원이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드러납니다.
2) 18-22절: 제자들을 부르시다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배우고 일할 사람들을 찾으셨습니다.
그들을 나중에 ‘제자’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제자는 정해진 기간 동안 배우는 사람을 말하지만
당시의 제자는 스승과 함께 생활하면서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해 배웠습니다.
당시 유대교 율법학자들은 여러 문하생을 두어 훈련시켰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목적으로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예수님의 기준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스승은 좋은 학생을 찾는 법입니다.
유명한 스승일 수록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어 엄선하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최고의 인재를 찾아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자로서 가장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이었습니다.
제자를 보고 스승을 알아 보는 법인데,
예수님이 선택한 첫 제자들의 면모는 스승으로서의 예수님이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태도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그물과 배를 뒤로 하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예수님의 부름은
그만큼 강력 했다는 뜻이며,
평범한 어부로 살았던 그들의 마음에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꿈틀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3) 23-25절: 사역을 시작 하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활동하셨습니다.
23절에서 마태는 그분의 활동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가르침, 설교 그리고 치유. 이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마태는 “하늘 나라의 복음”(23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알리셨고(설교) 그것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의 치유를 통해
하나님이 실제로 다스리고 계신 것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갈릴리뿐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 그리고 이방 땅에까지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묵상:
예수님에게는 ‘무리’가 있었고 ‘제자’가 있었습니다.
무리는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필요가 사라지면 예수님을 떠납니다.
반면, 제자는 예수님 곁에 머물러 사는 사람입니다.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당신에게 찾아오는 무리를 맞으시는 예수님은
그들이 당신의 설교와 가르침과 행적을 듣고 봄으로
제자로 발돋움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설교와 행적은 무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는 부름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 부름에 응답하여 따라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무리 가운데 남아 있지 않고 제자로 따라 나서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 이전글 1.5(토) 마태5장; 제자로 산다는 것 19.01.05
- 다음글 1.3(목); 마태3장_세레받으시다 19.01.03
-
- 이형원전도사 19-01-08
-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4:20)"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신다.
처음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곧 자신의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야고보와 요한 또한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그 분을 따르기로 작정한 제자들은
모두 그들의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와 그물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따르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면서 여전히 나는 그물을 붙잡고 있다.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꼭 붙들고 주님을 따르려고 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과 같은 믿음이 있길 원한다.
모든 것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삶이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언제나 세상의 것을 붙들고 살기보다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