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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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토) 마태5장; 제자로 산다는 것

  • 느헤미야강
  • 2019-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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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2: 뒤집어 산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무리를 바라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가 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이 뒤집어집니다.

현실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제자로 사는 방법은 불행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그분의 뜻을 위해 사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때로 손해와 고난과 박해를 불러 옵니다.

그럴 때 제자는 오히려 기뻐합니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 13-16: 타자를 위한 존재

하나님 나라를 알기에 이 땅에서 뒤집어 살기를 힘쓰는 제자는

물질만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삽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곧 세상에서 구별되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 구별됨은 하나님 나라를 믿고 살기에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될 것이라”(미래)가 아니라 되었다”(현재)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차별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은 과제는 어떻게 그 차별성(짠맛과 빛의 밝기)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은 말과 행동에서 튀어 보이도록 노력 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에 더 깊이 들어가 살라는 뜻입니다.

 

3. 17-48: 제자의 기준

1) 17-20: 율법이 아니라 복음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 주신 것입니다.

죄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으나

죄의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죄성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율법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뿐입니다.

모두가 아무 제한 없이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세상에서

그 정도만 지켜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정도의 수준에 만족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의 기준은 율법이 제시하는 최소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제시하는 최대한의 의입니다.

그렇기에 제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를”(20

넘어 서야 마땅합니다.

 

2) 21-48: ‘최소한의 의최대한의 의

예수님은 율법이 제시하는 최소한의 의와 복음이 제시하는

최대한의 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마태는 그 중에서 여섯 가지의 예를 기록합니다.

성경구절

(율법이 제시하는 최소한의 의)

(복음이 제시하는 최대한의 의)

21-26

미워하는 것은 허락한다.

다만 목숨만 해치지 말라.

미워하지도 말라.

27-30

성적인 상상은 허락한다.

다만 육체적인 관계까지는

가지 말라.

성적으로 범 하려는 마음도

가지지 말라.

31-32

기본적인 인권만 보장한다면

아내를 버려도 된다.

결혼을 지속할 수 없는

사유가 없다면

아내를 버리지 말라.

33-37

맹세를 했으면 꼭 지켜라.

맹세를 하지 말라.

너희의 한계를 인정하라.

38-42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었으면 받은 만큼만 돌려 주라.

해를 받아들여 네 선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라.

43-48

이웃은 사랑하되

원수는 미워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

 

위의 예로써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분명해집니다.

율법은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나무가 병들었는데

그 병은 그대로 둔 채 최선의 열매를 맺으려고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복음은 우리의 존재를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살며 그 다스림의 영향을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의 내면을 변화 시킵니다.

나무의 병이 치료 되면 열매는 저절로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를 넘어서게 됩니다.

 

묵상:

우리는 제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눈 뜨고

그 다스림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은 뒤집어집니다.

물질 세계를 전부로 알고 살았을 때의

세계관과 인생관과 가치관이 거짓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는 방법이 다르고 사는 목표가 달라집니다.

최소한의 의가 아니라 최대한의 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때로 조롱과 차별과 손해와 박해를 불러 오지만

실은 세상을 지키는 소금 혹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0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마태복음 5장부터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이 나온다.
      너무나도 귀한 말씀이 계속해서 나타나지만 특별히 사랑에 대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다가 온다.

      목회자로써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된다.
      특별히 이러한 사랑은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들 뿐 아니라 내가 원수로
      여기고 또 나를 박해하는 자까지 포함하여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없이 목회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의 힘으로 사랑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내가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심지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표현되길 원한다.

      주님 말씀 의지하여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내안에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