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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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수) 마태8장 행동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권위

  • 느헤미야강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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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부터 7장까지 예수님의 권위 있는말씀을 읽은 우리는

8장부터 그분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권위를 목격합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느껴지는 비범함은 그분의 행동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행동들을 통해 예수님은 당시의 유명했던

종교 지도자들보다 더 나은분이 아니라 다른분임이 분명해집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중 몇 가지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1-4: 나병환자 치유

나병은 오늘의 기준으로 한센씨 병이 아니라

전염성이 있는 여러 가지 난치성 피부병을 말합니다.

레위기는 이런 사람들을 격리 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왔다”(1)는 말은

예수님이 난치성 피부병 환자들이 격리된 지역으로 가셨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피해 지나가는 곳을 예수님은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 환자가 자신을 치유해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십니다.

레위기 규정에 의하면 그것은 부정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해 지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그를 정상인으로 대하시고 말씀으로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율법 규정을 따라 제사장에게 가서

완치 확인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의 마음의 질병과 육신의 질병과

사회적 질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이와 같은 온전한 샬롬을 가져옵니다.

 

5-13: 백부장의 믿음

가버나움은 세례 요한이 체포된 후에

예수님이 이주한 동네입니다.

그곳에는 중대 병력의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백부장은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동네에 들어 가셨을 때 백부장이 찾아와

자신의 종을 치유해 달라고 청합니다.

백부장이 병든 종을 위해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에 응답하여 따라 가려 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사양합니다.

유대인들은 부정해 지지 않기 위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백부장으로서의 자신의 권위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권위에도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말씀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놀라시면서 그렇게 해 주십니다.

 

14-17: 베드로 장모의 치유와 귀신들려 병든 자들의 치유

가버나움에 있던 베드로의 집에 들아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시어 치유해 주십니다.

그의 건강은 즉시로 회복되어 일어나

예수님과 그 일행을 대접합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있는 동안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들과 병자들을 데려 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치유해 주십니다.

 

이 지점에서 마태는 이사야서 53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으로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아픔과 질병을 담당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질병 중에 가장 깊은 질병은 죄입니다.

고난의 종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근원적인 질병을 짊어지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18-22: 부친 장사 요구

이어서 마태는 예수님의 대화 한 토막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감동한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섭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고 대답하십니다.

인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신 칭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하는 칭호가 아나라,

다니엘서 713절의 예언과 관계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세상에 대한

영원한 통치권을 부여 받는 존재가 인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적 신분을 생각하시고 이 칭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영원한 통치자가 지금 이 땅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유랑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미래에 그분의 영원한 왕권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는 그분의 고된 운명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대답을 듣고 그 율법학자는 풀 죽어 돌아갔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대화는 제자 중 하나에게서 시작합니다.

그는 제자로 따라 나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 아버지의 부고를 듣습니다.

유대적인 관습에 따르면 부모의 장례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22)고 말씀하십니다.

앞의 죽은 사람은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키고,

뒤의 죽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은 무엇이 우선이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도록 깨우치십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이 자식의 도리를

무시하도록 가르치셨다고 비약하지 말 일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일상적인 논리의 흐름을 뛰어 넘어

영원한 진리를 언급하곤 하십니다.

우리의 일차원적인 논리로 예수님의 논리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이기에 이런일을 행하실까요


23-27: 풍랑을 잠잠케 하신 이적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 호수를 바다”(24)라고 불렀습니다.

바다처럼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호수에는 지형상 갑작스러운 돌풍이 가끔 불어 닥쳤고

적어도 하루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호수 동편 이방 땅으로 가기 위해 출발했는데,

돌풍이 불어 예수님의 일행이 탄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자

그분은 마치 사람에게 하듯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람과 바다가 즉시로 잔잔해집니다.

갈릴리 호수의 특성을 아는 사람들은 일어난 일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과 기적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권위가

자연 현상에까지 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경이감에 사로잡혔습니다.

 

28-34: 가다라 지방에서의 귀신 축출과 돼지 떼 소동

예수님은 바다 건너편 이방인의 지역에 들어 가십니다.

그분에게는 금단의 땅이 없습니다.

난치성 피부병 환자들이 격리된 곳을 찾아가신 그분은

이방인의 땅으로 들어가십니다.

그 때 귀신들린 사람 둘을 만나셨습니다.

그 만남도 역시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그 정체를 알아봅니다.

그분의 권위로 인해 자신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감지한 귀신들은

이방인들이 그곳에 놓아 기르고 있던 돼지떼에게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짜낸 꾀였습니다만,

사태는 귀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귀신들의 돼지떼에게 옮겨 가자 돼지들이 발작을 일으켜

모두 호수에 빠져 죽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에게는 귀신 들린 사람이 치유 받은 것도,

비범한 권위를 가진 예수님이 오신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이익이 더 중요했습니다.

 

묵상:

인자이신 예수님의 권위를 생각해 봅니다.

그 권위는 말씀에서 드러났고, 질병 치유를 통해 드러났으며,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났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났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제자를 부르시는 행동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경배를 드립니다.

 

또한 그분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그분의 사랑을 봅니다.

인자이신 주님은 이 땅에서 고난의 종으로서 사셨습니다.

인류의 질병과 아픔과 고통은 마치 자석처럼

그분을 끌어 당겼습니다.

그분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잘 난 사람이 아니라 못 난 사람에게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에게로,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으로,

칫집이 아니라 초상집으로 가셨습니다.

사랑이 그분을 이렇게 이끌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그분을 십자가로 이끌었습니다.

그로 인해 구원이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그분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의 권위를 알아 보고 그 앞에 무릎 꿇는 이,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이는 복됩니다.

    • 이형원전도사 19-01-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8:22)"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든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한 서기관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대답하시는 예수님을 보면 그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먼저 가겠다고 하는 제자에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일 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말씀이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주님을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믿는 사람들 조차도 대 놓고 거부한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믿음의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일 보다 더 우선되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곳이 어디일까?
      그것이 곧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있어서 주님을 생각할 시간도 말씀을 묵상할 시간도
      기도할 시간도 없다고 핑계하는 삶을 살지 않길 원합니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일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입술의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