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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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월) 마태12장_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
- 느헤미야강
-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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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
1. 1-21절: 율법보다 더 크신 예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십계명 중 하나인 안식일 계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그러면 안식일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라는 것이
이스라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들려 준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오늘 우리 달력으로는 토요일)에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세밀하게 규정하여 안식일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허기를 채운 일이 있었습니다(1절).
이것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추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항의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윗의 예와 성전에서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의 예를 들면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하십니다.
다윗의 예를 든 것은 당신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라는 사실을 암시한 것입니다.
다윗왕이 안식일 율법에 저촉되지 않았다면
메시아이신 당신은 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이 “성전보다 크신 이”(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는 안식일 율법이 면제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안식일 율법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성전보다 크신 이요 영원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8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주인이십니다.
율법에 매인 분이 아니라 율법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 가시자,
사람들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두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10절)라고 묻습니다.
율법학자들이 만든 규정에 의하면,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면 치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손 오그라든 사람은 안식일에 고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는 그를 앞으로 나오게 하여 치료해 주십니다.
당신에게 그럴만한 권한이 있음을 보인 것이고,
율법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것을 반대하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마태는 이사야 42장 1-3절을 인용합니다(18-21절).
이것은 ‘고난의 종’의 노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통해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과 능력을 받으셨지만
그것으로 자신을 선전하고 높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섬세한 사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섬기는 일에 그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2. 22-37절: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 귀신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자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쫓아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의견이 둘로 갈립니다.
한 편에서는 “이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23절)라고 생각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예수님이 귀신의 두목인 바알세불과 결탁하여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에게 왔다”(28절)고 대답하십니다.
당신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그들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이미 사탄의 본진을 점령했다고 말씀하십니다(29절).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당신을 바알세불의 협력자라고 비난했던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단순히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신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거슬르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것(예수님을 오해하고 모욕하는 것)은
(회개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32절)고 하십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33-37절).
3. 38-50절: 영원한 가족
이번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38절).
이미 예수님은 여러 가지의 많은 표징을 행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볼 눈이 없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더 강력하고 분명한 기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요나의 표징”(39절)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답하십니다.
그것은 당신이 장차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사건을 암시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당신이 “요나보다 큰 이”(41절)요
“솔로몬보다 큰 이”(42절)라고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언자이시지만 그 이상이요,
솔로몬같은 지혜자이시지만 그 이상입니다.
메시아는 우리가 아는 모든 요소(왕권, 예언, 율법, 지혜 등)가
완전한 상태로 결합된 존재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귀신 들림에서 놓여난 사람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귀신 들림에서 치유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다시는 귀신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중립 지대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절대 독립이 불가합니다.
사탄의 지배권에서 살거나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 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43-45절).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곳에 찾아 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시켜서 예수님께 전갈을 넣습니다.
전갈을 전해 받은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5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족의 선언입니다.
피를 나누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영원한 연대는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가족을 소홀히 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 찾아온 계기에 영적 가족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묵상: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시고,
율법(안식일)보다 더 크시며,
예언자(요나)보다 더 크시고,
지혜자(솔로몬)보다 더 크십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의 원천이며 그 모든 것을 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 성부 하나님을 뵙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성전보다 크십니다.
그분은 모든 율법과 예언과 지혜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충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찾습니다.
그분을 사모합니다.
그분을 소망합니다.
그분이 종의 모습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병든 것, 사로잡힌 것, 부정한 것, 굽은 것,
막힌 것, 눌린 것을 찾아 오셔서
당신 몸에 그 모든 아픔과 고난을 담당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권세와 능력으로
자신을 높이고 알리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세상의 고난과 아픔을 치료하는 데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그분을 높이고 또한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입고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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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9-01-17
-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5)"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세와 모습을 통해 그 행적을 남기게 된다.
어떤 사람은 선을 쌓고 그 쌓은 것을 통해 선한 것을 내고
어떤 사람은 악을 쌓고 그 쌓은 것을 통해 악한 것을 낸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을 채워 나갔는지에 따라 선함이 나올 수도 있고
악함이 나올 수도 있다.
속에 악함이 가득한데 겉으로 선한척을 하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속에 악함이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 선을 내기 위해서는 그 안을 선한 것을 채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또 부름 받은 사역자로 내 마음 속에 선함으로 가득채우길 원한다.
이 선함은 바로 예수님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한 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가득하게 될 때 내 마음에 악은 저절로 물러나게 된다.
예수님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갈 때 나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며
그 향기를 통해 선함으 나타날 줄 믿는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좋은 가지가 되어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