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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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화) 스5장_다시 시작하라

  • 느헤미야강
  • 2018-11-27
  • 446 회
  • 2 건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로 말미암아 중단된 성전 재건의 역사는

중단된 채 14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이 사명을 잃어버린채 흘러가면서

유다 백성들의 삶이 자기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저 자신들의 삶의 행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일이 원수들의 반대로 말미암아 중단된 것이기는 하였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보다 분명한 원인은 원수들이 아니라

유다 백성 자신들의 삶의 나태와 자기중심성과

우선순위의 잘못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를 보내셔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게 하시면서 주신 메시지였습니다(1).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인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혀진 사명을 다시 발견하고

중단된 성전 재건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지도자들 뿐 아니라 온 백성이 각성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성전 재건의 역사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2)

 

다시 성전 재건이 시작되자 이 소식은

페르시아 제국의 강(유프라테스강을 의미함) 서편 총독 닷드내와

그의 행정관리인 스달보스내로부터

반대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미 유다 백성들이 귀환한지는 16~17년이나 지났고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성전 재건을 명했던

고레스(BC 539~530)가 죽고 캄비세스(BC 530~522)를 거쳐

다리오1(BC 522~486)가 즉위한 때였습니다.

이런 페르시아 당국의 문의는

유다 백성을 두려워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을테지만,

두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유다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힘을 더하여주었습니다.

이것이 5절에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라는 말씀입니다(3~5).

 

강 서편 총독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서신(6~17):

여기에 적힌 내용들 가운데 주목할 것은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역사를

소화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11~12절입니다.

자신들의 열조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자신들을 치심으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인식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런 역사적 인식 속에서

자신들의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이해입니다.

 

묵상:

 

살리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14년이나 자기 삶 속에 파묻혀살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성전 재건을 시작하게 한 것은

두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언제나 역사 속에서 잠자던 백성들을 깨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490년 전 종교개혁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교회를 깨워주신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회가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고도 능력있게 선포될 때

교회는 영광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말씀만이 우리의 나태하고 이기적인 삶의

고장난 부분들을 고치고 수술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세운 결심들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가?

또는 우리가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살았지만,

결국은 돌아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은 아닌가?

세월이 많이 흘러갔을수록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에 속한 것이라면

이제 다시 시작하라고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 john 18-11-28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스 5:2)

      사마리아인들의 반대로 인해 멈췄던 성전 재건이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다시 시작되었다.
      이 위대한 사역에 도구로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스룹바벨과 예수아였다. 
      이들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으며,
      그로인해 십 수년간 멈춰있던 귀한 사역이,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이 열매 맺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결단하는
      한 사람의 헌신, 그 한 사람의 열정을 보시고
      그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고 그 일을 이뤄가심에 있어서
      결코 그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섭리를 따라
      도우시며 그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나에게도 사명을 주시며
      당신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도전하시는데,
      나는 상황과 조건을 바라보며, 문제거리들을 핑계삼아
      결단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결단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에게 돕는 손길을 더하셔서
      그로 말미암아 그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필요를 따라 돕는 손길을 더해 주신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사명 주실 때에
      두려움과 염려를 이겨냄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때로는 외롭게, 어렵게 느껴지는 이 길을
      하나님께서 늘 돌보아 주시며 함께 걷고 계심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11-28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스5:5)"

      중단되었던 성전재건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선지자의 예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시작된 일이었다.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이 협력하여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전 재건이 다시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항상 일이 잘 풀리기만 하진 않는다.
      성전 재건의 소식을 들은 총독 닥드내와 그의 사람들이 조사하러 나온다.
      자칫 그들의 눈에 잘 못 보이면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갈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 장도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게 하셨다고 오늘 말씀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자들을 돌보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함깨 하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뜻을 이루게 하시는 줄 믿는다.
      하지만 그 일은 항상 순조롭게 풀리지 만은 않는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일로 인하여 고난이 찾아오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도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분이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라보길 원한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더욱더 힘써 하나님만을
      바라보길 원한다.
      그 때 하나님의 돌보심이 나의 삶 속에 가득하게 나타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