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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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월) 스10장_하나님의 참 백성의 모습

  • 느헤미야강
  •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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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의 용기(1~4):

에스라가 계속해서 울며 회개하고 자복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많은 백성들

에스라에게 나아와 그와 함께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까지도 포함하는

경건한 무리들이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1).

그들 중 스가냐란 사람이 에스라에게 말하기를,

우리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는데,

하나님의 교훈을 따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할 때 소망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2~3).

그리고는 앉아있는 에스라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주면서

자기들이 도울테니 이제 당신은 말씀대로 주장하고

행하라고 권하였습니다(4).

참으로 믿음의 용기를 가진 하나님의 참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금식하면서 죄를 다루는 에스라(5~8):

에스라는 힘을 얻어 모인 자들에게 맹세를 하게 하고(5)

성전에 들어가 금식을 하며 하나님 앞에 다서 엎드립니다(6).

이제 백성들의 공적인 죄를 다루기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죄를 다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공포하여 이스라엘 온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합니다(7).

삼일 내로 오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규정과 함께(8).

 

소집된 백성들의 엇갈린 반응(9~15):

백성들의 모인 때를 기록하고 있는데 920일 이었습니다.

그날은 큰 비가 내렸는데

백성들은 모이게 된 이 일과 큰 비로 인하여 떨었습니다(9).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었던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에스라는 성전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 잘못된 혼인관계를 끊으라고 명하였습니다(10~11).

대다수가 그 일에 순종하겠다고 반응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순종하는 이들은 이 일이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므로

각 성의 장로와 재판장들에게 그 실행을 위임하고

시간을 주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단과 야스야가 일어나 대적하였고

거기에 동조하는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드대 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15).

 

위임과 조치 그리고 범죄한 자들의 명단(16~44):

백성들의 제안대로 족장들을 위임하였는데

이들은 10월 초하루에 조사를 시작하여

1월 초하루에 조사를 마쳤습니다.

범죄한 자들은 아내를 내어보내고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범죄한 자들의 명단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18~44).

참으로 불명예스런 명단입니다.

 

묵상과 적용

 

여기서도 힘이 되었던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타이틀도 없는 남녀와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제사장과 레위 자손들 가운데서도 타락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참으로 경건한 자들이 백성들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핵심은 타이틀이 아니라 참된 경건입니다!


죄를 다루는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행하는 것입니다.

스가냐의 말대로 내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따라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는 것이 원리입니다.

이런 저런 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의 의논을 따라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교회의 죄를 다루는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다루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일 수 없을 것입니다.

에스라와 같이 전권을 가진 자도

죄를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면

오늘날은 얼마나 더 쉽지 않을까요!

그러나 경건한 자들이 에스라에게 힘을 주고

에스라는 즉시 일어나 행한 것이 아니라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이 일을 행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죄인이 죄인을 다루는 것은 언제나 이런 모습입니다.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반대하는 자들을 낳게 합니다.

레위 자손이 반대했다고 기록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15).


성경과 교회의 역사에서 그렇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리기 때문이요,

우리가 중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본성으로 밖에는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듭나고 거듭나지 않은 증거가 대부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 이형원전도사 18-12-05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스10:4)"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또한 그렇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돕는자 보다는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세상 또한 옆에서 도왔던 사람들 보다는 그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자들을 기억한다.

      하나님께 나아왔던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힘이 되어 준다.
      울며 기도하는 가운데 죄를 자복할 때 큰 무리가 나아와 그에게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가 일어나 율법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독려한다.
      또한 이러한 일을 위해 에스라가 나설 때 자신들이 힘껏 돕겠다는 약속도한다.

      이들에게 힘을 입은 에스라는 백성들을 모으고 이방여인들을 내보내며
      율법을 다시 세우게 할 것을 선포하게 된다.
      누군가가 옆에서 힘이 되어 줄 때 우리는 더 큰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도 누군가 그 길을 함께 할 때 많은 위로를 받는다.

      특별히 그 함께 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기도하는 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때로는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가야 할 상황도 있다. 또 때로는 옆 사람보다는 하나님만
      보고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기쁨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한다.
      비록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을 지라도 필요에 따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길 원한다.
      하나님의 앞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며 또 때로는 누군가에게 힘을 받으며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길 기도한다.
    • john 18-12-08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스 10:11)

      진정한 회개가 무엇일까?
      죄를 깨닫는것, 깨닫고 반성하는 것,
      깨닫고 돌이켜 대가를 지불하는 것.
      회개는 단순히 깨달음에서 끝나는 것도,
      후회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도 아닌
      대가를 지불하여 죄로부터 완전히 돌이키는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바벨론 포로시대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
      이방 여인들과 혼인하여 자식까지 낳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에 귀환하면서
      에스라는 이러한 죄악을 돌이켜 끊어내기 위해
      그들 가운데 함께 하는 이방 여인들을 내보낼 것을 명령한다.

      어차피 결혼한 사이인데, 자녀까지 낳은 이들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잘 교육하여 함께하면 되지 않나?
      이러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죄의 결과로 인해 누리는 것들을 끊어내는 것 또한
      회개의 열매이며 돌이킴의 증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죄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결국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도.

      부정함하게 행하여서 누리고 얻은 것들을
      계속 품고 있으면서 나는 회개했노라 돌이켰노라
      그래서 구원받았노라 고백한다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나의 삶에도 이렇게 내가 여전히 누리고 있는
      죄의 열매들은 없는가 돌아보며
      이러한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임을 생각해 본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또다른 마음의 생각을 꺾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가는 나의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