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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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수) 왕하13장_ 다함없은 하나님 은혜와 우리의 반응

  • 느헤미야강
  •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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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건

1.

본문은 이스라엘 예후 왕조의 두 왕의 이야기입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그 아들 요아스의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엘리사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베풉니다.

 

2.

유다 왕 요아스 23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이스라엘 왕이 되는데, 비록 왕조가 바뀌었지만

그도 역시 여로보암의 죄,

금송아지를 섬긴 우상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2).

하나님께서 아람 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을 통해서 징계를 하시자,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학대받음을 보시고

사사 시대와 같이 구원자를 보내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자는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를 가리키거나(17,19, 23~25).

아람을 쳐서 이스라엘로 아람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앗수르 왕 아다드-니라리 3(주전 810~783),

혹은 여로보암 2세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였든지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3.

유다 왕 요아스 37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어

16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도 선왕들 및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으나(11),

왕으로서의 치적도 남겼는데(12, 22~25)

이것은 엘리사의 말년의 사역과 연관됩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요아스는 엘리사에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하면서 울며 나아갑니다(14).

요아스는 이스라엘을 지켜준 것이 바로

엘리사의 존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마지막으로 요아스에게 동편 창 밖으로

화살을 쏘게 하고 또 화살들을 취하여

바닥을 치게 함으로써 요아스가 아람을 칠 것을 예언합니다.

하지만 요아스는 그의 영적 감각

즉 믿음의 부족으로 화살로 바닥을 치기를

세 번만 하고 그침으로써 아람을 진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결국 엘리사는 죽지만 그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쳤고

아버지 여호아하스가 빼앗겼던 두어 성읍들을 회복합니다.

 

4.

엘리사가 죽고 장사 지낸지 1년이 지나서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장사하려고 하다가

모압의 도적떼들이 이스라엘 지경에 들어온 것을 보고

시신을 급히 엘리사의 묘실에 던지고 도망할 때,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엘리사는 죽었어도 엘리사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보여주십니다.

 

5.

하나님의 은혜는 다함이 없고 무궁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증명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러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시면서

은혜를 베푸시고 돌이킬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는 아합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어도

여전히 우상을 섬기는 왕들이었으나,

엘리사의 죽음의 순간에까지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그치지 아니하십니다.

심지어 엘리사의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을 돌보심을 보이십니다.

 

우리는 그런 은혜를 아는가?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처럼 우둔한 수준으로 깨닫는가,

아니면 참으로 은혜를 깨닫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께 돌이켜 살아가는가?

하나님의 그 은혜 앞에 아직도 반응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부모나 자녀와 배우자나 친구들을 기억하고 기도하십시오.

오늘도 변함없이 다함이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 john 18-11-09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왕하 13:4)

      이스라엘은 지도자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백성들의 신앙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북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왕들이
      악한 길을 따라 행하였기에
      백성들의 신앙도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고통 가운데서 건져내 주심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우리를 향하신 인애와 자비를 거두지 않으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자주 잊은채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며
      나의 정욕을 따라 살아갈 때가 적지 않다.
      어려움을 당하거나 위기의 순간에만 돌이켜 의를 행하다가
      문제가 해결되고 어려움이 사라지면
      이내 다시금 내뜻대로 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내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다.

      이러한 모습이 과연 진정 은혜를 아는 사람의
      모습일까?
      오늘 말씀을 통해 고민하며 돌이켜 본다.
      하나님은 나와 같은 자에게도 늘 은혜 주시기 원하시는데
      내가 그 은혜를 마음 깊이 깨달았다면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떠한 가운데 구원하셨으며
      어떠한 은혜로 사랑하셨는가,
      주님 사랑의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어떠함을 매 순간 떠올려
      그러함으로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사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11-09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왕하 13:4)"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죄를 지은 자들에 대해서는 오래참으시고 그 죄에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대 왕들의 죄에서 여전히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아람 왕을 통해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은 어려움이 오자 하나님께 구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자를 세우셔서 그들을 도우신다.

      마치 사사시대의 모습이 연상이 된다.
      범죄하는 백성들,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을 다시 찾는 백성들
      그리고 구원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이러한 싸이클은 지금이나 그 때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고 고백하지만 여전히 우리 가운데
      죄의 모습은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심으로 때로 그 죄에서 떠나기도 하지만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자유해 질 쯤 또 다른 문제가 나를 계속해서
      가로막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그리고 그 사랑이 거할 때 죄의 모습에서
      완전히 떠나 오길 기도한다.

      또 때로 넘어지고 유혹에 빠진다 해도 곧 그곳에서 나아오고 돌이킬 수
      있기를 원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의 삶속에 나타나길 그리고그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