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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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화) 왕하18장_ 믿음의 위기가 찾아올때

  • 느헤미야강
  •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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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스기야는 유다 역사에서 비범하게

하나님을 잘 섬겼던 인물입니다(5).

그의 경건은 다윗에 견줄만한 것이었습니다(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형통을 주셨습니다(7).

여기서 이야기하는 형통함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39).

실제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히스기야에게 일어난 일은 앗수르의 압박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4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고 그후 10년이 지나자(13)

앗수르가 유다의 성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엄청난 조공을 약속하고

앗수르 군대를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의 기둥과 문에 입힌 금까지

모두 벗겨 앗수르 왕에게 보냈다는 것은

상황의 비참함을 설명하기에 충분합니다(16).

이렇게 보낸 조공은 앗수르 왕을 만족시키지 못하여

다시 예루살렘은 앗수르의 대군에게 포위되는 위기를 맞습니다.

 

이때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성밖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 말은

예루살렘의 장관들과 군사들 그리고 성들의 사기를 꺾고

그들을 낙심하게 하기에 너무나 충분했습니다(19~25, 28~35).

랍사게의 이야기의 핵심은

이 위기의 순간에 의뢰할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을 의뢰해도 소용없으며

히스기야가 의뢰한다는 하나님을 의뢰하여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랍사게는 자기들의 성공과 강대함

그리고 자기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이렇게 치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뜻이 아니면 어찌 가능하겠는가

하는 논리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랍사게는 의도적으로 유다 방언으로 이 말을 함으로써

듣고 있는 모든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낙심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말고 앗수르의 왕을 의뢰하며

그가 주는 모든 선한 것들을 누리라고 도전합니다(31~32).

 

2.

이런 위기의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할 것인가?

백성들은 앗수르 왕이 모든 좋은 것들을 약속하는 상황 속에서

경건한 왕 히스기야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의뢰할 것인가?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믿음의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삶에

이런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괴롭게 하시려 함이 아니요

마침내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를 시험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 나는 어떻게 행하는가?

앗수르 왕이 약속하는 것과 같이

세상이 약속하는 좋은 것들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뢰하며 계속해서 그분을 붙들 것인가?

이것이 히스기야 왕과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당한 시험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처지와 상황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의 위기를 지혜롭게 감당하라고

성령님께서는 이 기사를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 john 18-11-14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17a)

      하나님께 연합하여 그분의 뜻을 따르며 행했던
      히스기야. 오늘 말씀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형통한 삶은 누구나,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꿈꾸는 삶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형통함의
      전제조건이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삶이 형통한 삶이며,
      여호와께서 함께하실 때 비로소 형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형통함이라 하면 모든일이 막힘 없이
      질 풀리고, 원하고 뜻하는 바가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신앙인들도 형통함을 꿈꾸고 바란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나타난 바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실이 진리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만이 가장 복된 길임을
      깨닫게 되지만 나 역시고 단지 막힘없이
      모든 소망과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형통함을 구하고 바라왔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형통함이 무엇인지,
      어떻게해야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말미암는다.

      내가 진정 형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내가 바라고 구하고 의지할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어야 한다.
      매 순간 주님을 바라며, 주님을 의지하며,
      또한 주님과 동행함으로 진정 형통한 삶,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11-14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왕하18:7)"

      히스기야 왕은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였고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형통함을 허락하셨다.
      이러한 형통함은 곧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곧 형통한 삶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형통한 삶은 모든 것이 평안하고 내가 계획한 일이 잘 이루어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러한 그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형통하다는 표현 후에 그가 당한 어려움이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은
      형통함이 평안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 속에 형통함이 있기를 모두가 바란다.
      하지만 진정한 형통은 어려움이 없는 삶이 아니라 어려움 중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바라보는 삶이다.

      내 삶이 형통하여 지길 원한다. 내 삶 구석구석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시길 원한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또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시길
      간절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