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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월) 왕상15장_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 느헤미야강
- 2018-10-15
- 518 회
- 2 건
왕상15장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아비얌, 아사 그리고 나답과 바아사
1.
왕상 15장에는 여러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유다에서는 르호보암에 이어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지만
3년 만에 죽고 아들 아사가 이어 41년을 통치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2년을 다스렸을 때,
바아사가 모반을 일으켜 나답과 여로보암의 남은 자손을
다 죽이고 24년을 통치합니다.
여기서 오직 아사만이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온전했다고 평가합니다.
이 시기에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지속되었습니다(6~7,16,32).
2.
[아비얌(1~8)] 성경이 모친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는
어머니가 끼친 영향을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경우입니다.
아비얌의 모친 마아가는 아비살롬(압살롬)의 딸(혹은 손녀)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모친도 마아가였는데 그녀는 이방 그술 왕 달매의 딸로
다윗에게 시집온 여인이었습니다(삼하 3:3).
그리고 아비얌의 모친 마아가는 조상처럼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13)!
이런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아비얌은 범죄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해주셨습니다.
3.
[아사(9~24)] 아사의 모친도 마아가인데(10)
이것은 히브리식 표현으로 어머니나 할머니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누가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 기자는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손자를 아들이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아사는 아비얌의 아들이었고 마아가는 그의 할머니였습니다.
아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였고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우상을 파괴하였으며 우상을 섬기는 할머니 마아가에게서
태후의 위를 폐하였습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을 모두 제하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들은 남겨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사의 예배 개혁은 북왕국 이스라엘에 있는
경건한 백성들을 유다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대하 15:9).
교회가 참된 예배를 회복할 때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자기 백성들이
유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다를 침략하고
국경 지역에 라마 성을 건축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사는 다메섹 아람 왕에게 예물을 보내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깨고 자기를 도와 이스라엘을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여 성공을 거둡니다.
앗수르의 공격으로 바아사는 황급히 수도 디르사로 돌아가게 되고
아사는 바아사가 국경에 건축하려했던 모든 건축 자재를 가져다가
게바와 미스바에 성을 건축합니다.
아사는 예배 개혁에 있어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역대하는 그가 말년에 이 전쟁에서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다고 지적한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두는 죄를 범하고 이로 인하여 통치 39년에
하나님의 징계로 병이 들어 죽었다고 기록합니다(대하 16).
아사는 선지자 하나니를 옥에 가둠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태도입니다.
아사는 병이 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
의사들에게만 의존함으로써 시작은 훌륭했지만
안타깝고 비참한 마지막을 보여주는 왕이 되었습니다.
출발은 좋았지만 끝이 나빴습니다.
4.
[나답(25~31)] 나답은 아버지 여로보암처럼
악을 행하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
결국 바아사의 모반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멸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것은 선지자 아히야의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왕상 14:10~11,14).
5.
[바아사(32~34)] 피를 흘리고 왕이 된 바아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24년을 통치하면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6.
본문이 주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사가 예배를 회복했을 때
북왕국의 경건한 자들이 그에게로 모여왔습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입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본문은 준엄하게 정죄합니다.
예배의 회복이 없이 교회를 확장하고 성장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신앙에 있어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하나님의 은혜만이 절대적이다)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 마아가의 영향 속에서 자랐음에도
예배의 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아사나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왕상 14:13)는 예외적 인물입니다.
세번째로 사람은 죽어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26).
이것은 30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평가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죄를 많은 왕들이 답습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실로 무섭습니다.
우리 인생은 결코 하나의 인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행보는 후대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경건한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죽어서도 말하고,
죽어서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칩니다.
악하게 살아갔던 사람 역시 남은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칩니다.
끝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아사가 초기에는 하나님을 의뢰하였지만
끝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아람 왕과 의사를 의지했던 것은
슬프고 비참한 일입니다.
끝맺음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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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10-16
-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왕상 15:26)
성경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우며 자아실현의 길을 가는 사람.
자아실현이 왜 믿음의 길과 대조되느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죄이다.
연약한 우리, 죄인인 우리는 우리 힘으로 결코 하나님의 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여러 왕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 대부분이 악한 길로 갔던 것을 알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며 살았다.
죄인인 모든 인간이 자신의 뜻을 이루며 살 때 그것은 곧 악한 길을 가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 아니면 내 자아의 요구?
만일 후자라면 나 역시도 악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악한 길을 걸었다고 평가받는다면
그것만큼 두렵고 떨리는 일도 없다.
그렇기에 내 뜻대로 사는 모든 시도들을 중단하는 일이 오늘 나에게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믿음의 길을 걸었던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
나 또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믿음의 길로만 걸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늘 말씀에 나를 비추며
믿음의 길을 걸었던 성경의 좋은 예들을 따라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말씀을 통해 배우고 본 바를 행하며 그렇게 믿음의 길로 가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10-17
-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왕상15:30)"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 이어 그의 아들 나답이 그 왕위를 물려 받는다.
그러나 바아사는 나답을 죽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게 다 멸하였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오늘 30절 말씀은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 했을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죄로 말미암아 수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죄를 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죄악 때문에 그 집안의 모든 생명있는 자는 멸하여지게 된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한 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때로는
가르쳐야 하는 사역자로써 나의 잘 못 때문에 누군가가 시험에 들고 혹은 누군가가
범죄하게 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하며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할 줄 믿는다.
또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줄 안다.
언제나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주님의 뜻이 나의 삶 속에 나타나고
더 나아가 나와 함께 하는 자들에게도 그 일들이 확장되어져 가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