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9.10(월) 삼하9장_내게 주신 힘은 섬김으로 나타나야

  • 느헤미야강
  • 2018-09-10
  • 564 회
  • 2 건

고대 역사를 보면 새로운 왕이 즉위한 이후에

자신과 뜻을 달리한 특정 계파의 사람들을

피의 참극으로 숙청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원한으로 정적을 죽이는 왕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일어났고 일어납니다.

 

왕이 된 후에 다윗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후에

그 옛날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이 기억났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1)

 

다윗이 사랑했고 서로 언약의 관계였던 요나단이라 하더라도

사울의 집안 사람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주변 모든 신하들이 말릴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그 옛날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을 떠올리고

사람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3)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졌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중 한 사람, ‘므비보셋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두 다리를 모두 저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요나단과 할아버지 사울이

한 날 길보아 산 전투에서 죽었던 날입니다.

아버지 요나단과 할아버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모는 그 아이에게 닥칠 위험을 직감하고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다가

아이를 떨어뜨려서 두 다리를 절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므비보셋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습니다(삼하4;4).

 

양 쪽 다리를 다 절게 된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된 므비보셋은

살아있으나 산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정권이 바뀌고 사울의 원수 되었던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연전연승, 가는 곳 마다 승승장구합니다.

아마 므비보셋은 죽은 듯이 숨어있었을 것입니다.

사울 집안의 화근를 없애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찾아서

죽일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므비보셋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신분을 세탁하고 숨어있으라고 권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그는 죽은 듯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공권력의 정보력은 대단했습니다.

다윗이 이 사람을 찾아보자는 마음을 품는 순간

모든 곳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므비보셋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제 나는 죽었구나, 나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는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모처에 숨어있었던 므비보셋을 다윗은 데려오라고 합니다.

왕궁으로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왕 앞에 서자 그는 납작 엎드립니다.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6)

 

성경은 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절했다고 표현한 것은

다윗앞에 납작 엎드린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목숨만 살려달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왕에게 엎드렸는데

다윗이 말하는 말은 의외입니다.

 

사울의 모든 재산을 다시 복원시키고 회복시켜주고

너는 나와 함께 같은 상에서 함께 먹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7).

므비보셋을 왕자 가운데 하나처럼 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전해져서

많은 백성들은 다윗의 궁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말 우리 왕이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약자 편입니다.

 

백성들은 그 옛날 다윗이 쫓겨 다닐 때는 다윗의 편이었다가

이제 다윗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는

다시 몰락한 사울 왕가의 불쌍한 자손들의 상황에 가슴 아파합니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윗 주변에 있었던 신하들은 아마 그의 이야기를 듣고

펄쩍펄쩍 뛰었을 겁니다.

불행의 씨앗을 없애야 된다고, 죽여야 한다고,

유배시켜야 된다고 상소를 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단호했습니다.

요나단과의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비난도, 청원도 듣지 않고

므비보셋을 회복시켰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행한 이후 계속영토를 확장하고 연전연승을 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의 영토까지 지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용맹함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칼의 힘으로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넓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 품어주는 마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본문을 통해 주신 묵상과 나눔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나 승리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때마다 시험을 주십니다.

이것은 넘어뜨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가시려는 의도입니다.

때로 우리가 시험에 패스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또 다른 때에 그 시험을 다시 주십니다.

 

다윗은 수많은 시험을 지나 여기 왕위에 이르렀는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승리를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윗 또한 아직도 완성된 자가 아니기에

다른 시험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면

그 힘이 어떤 힘이거나 관계없이

그 힘은 섬기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왕의 힘을 은총을 베푸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총 베풀 자를 생각하고 찾아내어

그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반영하는 모습입니다.

 

나에게 힘이 있는가?

그 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힘이고,

사랑의 수고가 되어야 합니다(살전1:3).

내가 은총을 베풀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아무도 은총을 베풀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섬기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겠습니다.

나에게 어떤 힘이 주어지면 섬기는 일에 사용하겠습니다.

 

 

    • john 18-09-11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삼하 9:1)

      자신을 몇 번이나 죽이려했던 사울
      자신을 미워하고, 속이고, 괴롭게 했던 사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런 그와 또 그의 집안을 선대했다.
      기본적으로 덕이 있고 품이 넓은 좋은 성품을 가져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에는 사울이 그에게 가했던 위협이 너무도 컸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토록 너그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그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양 떼를 돌볼 때에도, 골리앗 앞에 섰을 때에도,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피할 길이 되시고 요새와 산성이 되어주셨던 하나님.
      넘치도록 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에
      자신 또한 그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원수와 같은 자도 선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단순히 부럽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나 또한 이런 은혜를 입은 사람인데, 나는 왜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는가? 도전을 받는다.
      하나님이 날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고 믿으면서
      내가 어떠한 가운데 구원받은 자인가를 알면서도
      다른 이들의 작은 실수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 눈에 티끌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다윗의 모습을 통해 새롭게 결단하게 된다.
      내가 진정 은혜 받은 자가 맞다면, 죄악 가운데 구원받은 사람이 맞다면
      은혜 받은 자로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 인지
      얼마나 값비싼 은혜인지를 기억하며 나 또한 받은 사랑을 마땅히 전하며 살아야 함을.
    • 이형원전도사 18-09-11
      "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9장 1절)"

      다윗은 왕으로 세움을 받고 여러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런 상황에서 다윗은 요나단과 했던 약속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가족 중 남아 있는 자를 찾게 된다.
      그들을 찾는 이유는 원수를 갚고자 함이 아니라 요나단과 했던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마침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있었고 다윗은 그를 찾아서 왕자들과
      같은 대접을 함으로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게 된다.

      사실 요나단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죽이려했던 원수의 가족을 거두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반역의 씨앗이 남겨두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품이 넓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보다는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나를 죽이고자 했던
      사람의 손자이지만 그러한 므비보셋을 품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원수를 사랑 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분의 말씀을 내 삶 가운데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원수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나의 모습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기를 원한다. 개인적은 은원관계를 따지기 보다
      보다 넓은 품을 갖고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내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