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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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화) 삼하10장_은혜에 은혜로운 반응을 하라

  • 느헤미야강
  • 2018-09-11
  • 48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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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에서 다윗은 사울 집안의 남은 자손을 찾았는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하여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므비보셋은

그 은혜를 은혜로 알고 반응을 했습니다(9:8).

 

오늘 10장이 보여주는 사건은

다윗이 이전에 은혜를 입었던

암몬 왕 나하스의 죽음을 조문하러 보낸 사절단에게

모욕을 주고 돌려보낸

그 아들 하눈의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아마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

나하스의 은혜를 입었던 듯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에 사절단을 보내지만,

어리석은 하눈은 선의의 행동을 악의의 행동으로 갚았습니다.

므비보셋과는 전혀 다른 반응입니다.

이것은 한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상이한 두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다윗은 이런 하눈의 반응에 대해서

군사들을 보내 심판을 행합니다.

하눈은 자기가 다윗의 대적이 된 것을 알고

인근 국가들, 벧르홉 아람, 소바, 마아가 그리고 둡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33,000명의 원군을 얻게 되지만,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에게 완전히 패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이 가져오는 결과를 잘 보여줍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적대하는 세력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돕는 것도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은 이 사건을 통해서 아람 사람들이

다시는 암몬을 돕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세상은 알기 시작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사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에 나타난 은혜의 행위에 대하여

반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는 은혜로운 반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나라()를 세워주십니다.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나라를 세우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실을 놓치고

자기 자신이 뭔가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넘어지는 바로 그 지점이 됩니다.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묵상과 나눔의 은혜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고 선한 일을 하면

선을 받은 사람은 복을 받고 만약 받지 않으면

나에게 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호의를 베풀기 전에

저 사람이 내 호의를 받을 만한 사람인가?

받지 않을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판단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선을 행하면 그뿐입니다.

그 사람이 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몇 배의 축복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람 족속을 완전히 눌러버리고

암몬도 다윗 앞에서 꼼짝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복을 전하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받아 갑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했지만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 곳에서 큰 기적을 행하지 아니한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을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동네 사람들이

오히려 주님의 기적의 손길에서는

가장 멀어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선한 말을 하시고 선한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말과 행동을 하겠습니다.

호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9-12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삼하10장4절)"

      많은 싸움들이 오해에서 시작됨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원래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나 그것이 오해를 낳아서 서로에게
      갈등이 되고 또 그것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오늘 말씀에 하눈은 선한 의도로 조객을 보낸 다윗의 의도를 오해하였다.
      그는 그들이 진심으로 애도하기 위해 조객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정탐하러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오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들을 오해할 때가 있다.
      좋은 의도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도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을
      진심으로 받아 들일 줄 아는 넉넉한 품이 있기를 원한다.
      혹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진심으로 대하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믿음도 있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오해와 거짓 그리고 싸움으로 얼룩진 인생이 아니라
      선한 마음과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한다.
    • john 18-09-12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삼하 10:3a)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베푸는 호의에 대한 반응이 언제나 선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요청 앞에서
      단지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에, 이를 받아들이며 억지로라도 순종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나의 결단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을 베풀었던 상대방은 도리어 나를 공격하고 불쾌하게 할 때가 있다.
      마치 다윗의 선대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대적한 암몬 자손들처럼 말이다.

      대단히 억울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했는데 왜 이런 상황을 주시느냐고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갚아줄까? 어떻게 해결할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는 사랑만하면 된다.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이 아닌가?
      내가 행하는 선에 대한 반응은 늘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내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반응이나 선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명하신 하나님의 마음, 나를 보고 기뻐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 상황들로 인해
      상처 받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선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