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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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수) 삼하11장_은혜&자기자리

  • 느헤미야강
  • 2018-09-12
  • 479 회
  • 2 건

1. 첫번째 성경읽기: 은혜가 있어야 한다.

다윗의 비열한 죄악을 폭로하는 것이 바로 11장입니다.

다윗은 왕들이 출전하는 전쟁에 나가지 않았고

하나님의 갑주를 벗었다는 것이

그의 게으름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1~2).

저녁에 침상에서 일어났다는 말은

부하 장수들은 전쟁터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왕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고발합니다.

영적인 게으름은 타락을 가져옵니다.

게으른 자의 밭에는 가시덤불이 퍼지고

거친 풀이 덮이고 돌담이 무너지게 마련입니다(24:30~32).

 

다윗의 범죄는 눈에 보는 것인 시각에서 출발하였습니다(2).

그는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고

그 여인은 심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윗은 이미 음란함으로 여인을 바라봄으로 범죄하였습니다(5:28).

이것은 욥이 보여준 경건한 태도와 상반됩니다.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31:1).

밧세바가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인 유부녀였다는

신하의 보고는 다윗의 정욕을 그치게 했어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의 끝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범죄하는 모습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1:15).

밧세바의 임신은 또 다른 죄를 낳게 했습니다.

우리야는 본문이 보여주는대로 신실한 장수였고,

다윗에게는 충성스런 신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정예부대 37인의 용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삼하23:39).

하나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다윗은

또 다른 죄를 계획합니다.

결국 우리야가 아내와 잠자리를 갖게 하는데

실패한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요압에게 편지를 전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블레셋의 손에 죽게 하려고 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야가 죽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고

이후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주변 사람들에게

죄가 가리워진 것처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

인간이 갈 수 있는 자리를 보게 됩니다.

 

본문은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육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질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한 사람의 도덕성과 인격이

신앙을 형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분을 닮아가도록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순종이 현재와 미래의

신앙의 보증이 되지 않습니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2. 두번째 성경읽기: 자기 자리 지키기

좋은 학생이란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학생입니다.

목사 입장에서도 가장 고마운 교인들이 있습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예배의 자리를 지켜주시고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서

말없이 묵묵히 서 있는 분들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도 역시 그렇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 계시는 분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변하지 않아야 하고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입니다.

 

다윗은 악한 인간 밑바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계명을 세 가지나 어겼습니다.

간음! 살인!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하신 계명도 어겼습니다.

이런 엄청난 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었습니까?

 

이 모든 것은 왕의 전쟁이라 할 전쟁터에 있어야 할 다윗이

요압만 보내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자신의 위상이 그 정도 일에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가지 않고 요압만 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가도 충분히 가능했을터이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이었고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정체성이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들과 함께 있을 때 빛을 발합니다.

양들이 가는 곳이라면 목자는 당연히 어디나 가야만 했습니다.

양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목자가 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양들이 가는 곳에 목자가 앞서 가서 양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 다윗은 궁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당연히 가서 양들과 함께 싸워야 되는데

그는 가지 않고 요압을 보냅니다.

후방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작은 틈을 파고 들어옵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

다윗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때

그는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을 보게 되었고

음욕을 품었고 간음을 일삼고

그 일을 숨기기 위해서 살인까지 합니다.

 

이렇게 무서운 죄는 한순간에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의 자리를 지키지 못함으로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사명의 자리,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빈 틈이 생기게 됩니다.

악한 것이 들어올 기회를 주게 됩니다.

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어서는 안되는데

다윗은 그 빈틈을 사탄에게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기도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우리를 지키는 일이요,

가정을 지키는 일이요,

나아가서는 이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기도는 사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중요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자리,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목적이 어디인지를 기억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기뻐하시는 자리입니다.

오늘 하루도 사명의 자리를 굳게 붙들고 살아가시는

주의 백성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잘 지키겠습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깨어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예배의 자리!

헌신의 자리!

말씀의 자리!

섬김의 자리!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 john 18-09-13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삼하 11:15)

      육신의 정욕이 낳은 참혹한 결과가 오늘 말씀에 나타나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이야기 하지만 아무리 인간의 욕구라해도
      절제해야 하고 조절해야 할 때가 있다.
      이것이 인간과 짐승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째든 한 사람의 무절제로 말미암아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다윗 역시도 ‘나는 인간의 기본 욕구도 누릴 수 없는가?
      더욱이 나는 왕이 아니던가?’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은 결국 살인을 교사하는
      엄청난 범죄에까지 연결돼 버렸다.

      모든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지만
      이것을 누림과 동시에 다스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서 볼 때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제 아무리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이라 할지라도
      절제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또한 얼마나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게 되는지를 기억하며
      정욕대로 사는 내가 아닌, 말씀대로 사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9-14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삼하11장2절)"

      다윗이 범죄하는 모습이 11장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운 왕으로써 많은 믿음의 모습과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죄악된 모습이 그 안에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님을 말씀을 통해 보게된다.

      특별히 그에게 죄악이 찾아온 때는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 된다고 판단할 만큼 여유있고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죄악은 다윗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그 죄악은 다윗이 사람을 죽이는데
      까지 주저함 없이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믿음의 싸움은 우리 인생이 다하는 날 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 승리했다고 영원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느슨해 지고 하나 둘 씩
      양보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너무나도 큰  죄의 자리에 앉게 된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길 원한다.
      내가 지금 죄악된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작은 것 하나하나를 양보해 가며
      결국 내 전부를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악은 어떤 모양으로도 버려야 한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뿌리들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늘 경계하며 주님 앞에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