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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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목) 삼하12장_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 느헤미야강
  • 2018-09-13
  • 506 회
  • 2 건

다윗의 범죄 사건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성경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혹 일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이 기간 동안에 다윗의 마음에 평안이 있었을까요?

그는 아마도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지냈음이 분명합니다.

비록 원하던 여인을 얻었지만 말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나단을 보내셨습니다.

나단을 보내신 의도는 진노와 처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와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나단이 꺼낸 이야기에 대한 판결을 내린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는 나단의 선언은

하나님과 율법 앞에서 다윗을 벌거벗긴 말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부자였고, 밧세바는 암양 새끼였으며

우리야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입으로 자기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습니다(9).

하나님은 사울에게서처럼 떠나시지는 않겠지만

다윗의 집에 칼이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백주에 다윗의 처들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성경의 어떤 인물도 보여주지 못한

가장 놀랍고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13).

 

회개에는 어떤 변명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진위를 아십니다.

그래서 나단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말했을 때, 이미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의 진실성을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회개가 그저 단순한 한 마디 고백이었다고

느끼기가 쉽지만, 다윗은 시편 51편이 보여주는대로

그런 회개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시지만,

그 죄에 대한 징계를 거두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죄의 결과를 감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낳을 아이를 데려가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유는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거리를 얻게 했다는 것입니다(14).

즉 하나님은 만 백성 사이에서 의롭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 아이를 데려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에서 죄의 결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될 때에는

모든 죄의 결과들로부터도 우리를 완전하게

구속하여 주실 것입니다.

 

아이를 낳았을 때 다윗은 7일 동안을 금식하며

밤새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죽자 다윗은 평정을 되찾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것은 그 마음 속에 쓴 뿌리를 남겨두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이 일 후에 하나님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이름을 주신

솔로몬을 주셨습니다.

 

죄를 져서 지옥에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마음입니다.

즉 깨어진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루터가 말한대로 우리의 전생애는 회개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 john 18-09-14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하 12:12)

      일생 일대의 실수를 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엄청난 징계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정죄하여 끝내는 것이 아닌
      회복과 은혜의 도구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다윗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회개한다.

      하나님은 죄인이 벌을 받고 멸망하는 것보다
      돌이켜 회개하고 의롭게 되는 것을 원하신다.
      그렇다면 때때로 나의 죄악 가운데 찾아오는 징계는
      나를 새롭게하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도구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지 못하고
      나에게 찾아오는 징계 앞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보다
      원망과 불평만을 앞 세웠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를 살리시는 길이고
      언제나 나를 가장 선하게 이끄시는 길이다.
      그렇기에 매사에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은혜에 합당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기를
      이 시간 결단한다.
    • 이형원전도사 18-09-15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ㅇ호아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12장13절)"

      다윗이 범죄한 후 그 일은 아무도 모르게 끝나는 것 같았을 것이다.
      다윗은 왕이였고 이 일을 덮을 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의 계획 대로 우리아는 죽었고 이제 이일은 그렇게 묻힐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을 지언정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이 죄를 책망하신다.

      다윗은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을 잠시 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한 번 쯤 눈 감아 주실 것이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단을 통해 질책을 받고 그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다윗과 사울이 달랐던 가장 큰 점이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은 죄를 범했지만 그 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회개 했다.
      그 결과 그는 사울 처럼 버림을 당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것 또한 교만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철절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해결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한다.

      때로 그 죄악과의 싸움에서 져서 원치 않는 자리에 간다할지라도
      그것이 곧 죄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있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함과 모든 것을 보시는 주님을 인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