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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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금) 삼하13장_모든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 느헤미야강
-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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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 다윗 집안에
끊이지 않는 범죄들이 이제 시작됩니다.
본문은 집안에서 일어난 성적 범죄와 살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다윗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21).
단지 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왕위계승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는 장자는 암논입니다.
그는 이복누이 이자 압살롬의 동생인 다말을 사랑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은
아버지 다윗이 밧세바를 얻었던 것과 같이
힘에 의한 정복이었습니다.
친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도 보게 됩니다.
다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병이 난 암논의 친구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기록한대로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
먼저 일을 저지르라는 것이 요나답의 충고였고
암논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힘으로 다말을 정복한 암논은
이제 다말을 미워하여 내어쫓습니다.
힘으로 밖에는 얻을 수 없었던
자신의 비참함에 대한 표현일까요?
이 사건은 집안에서의 복수로 이어집니다.
다윗 뿐 아니라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이후 2년 동안이나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냅니다.
다윗이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압살롬의 마음에 다윗에 대한 적의감과
암논에 대한 복수심을 더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건이 다 잊혀졌을 것이라고 여긴 2년이 지난 후,
압살롬의 양털을 깍는 축제 기간에
압살롬은 모든 왕자들을 불렀고
특별히 다윗에게 암논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축제 기간에 압살롬은
암논에 대한 계획적인 복수 살인을 성공시키고
자기의 외조부인 그술 왕에게로 피하여
3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루 아침에 두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 다윗은
날마다 살아있는 아들 압살롬을 인하여 슬퍼합니다.
하나의 범죄가 또 다른 범죄를 낳습니다.
다윗의 범죄가 자식들의 세대에 다시 답습되었습니다.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다윗은
자신의 범죄의 사실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다윗은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것은 또 다른 피의 비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공의로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힘과 계획으로 원수를 갚았습니다.
암논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주실 것을 기다리지 못했고,
압살롬도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시는 것을
신뢰하고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다, 자기 힘으로 자기가 처리하면서 살아가는
불신앙을 드러낸 까닭입니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종 다윗을
만들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그가 쓴 시편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속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당신의 삶에서 가장 비참하고 의미없어 보이는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거룩하신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가시면서 말입니다.
이 사실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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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9-15
-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삼하13장 29절)"
다윗의 죄악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그 아들들에 죄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먼저,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를 힘으로 제압하여 취하였고 또 취한 후에는
그를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압살롬은 이런 일을 행한 암논에 대하여 살인이라는 죄를 통해
복수를 행하게 된다.
다윗의 죄 다음에 그 아들들의 죄악이 나오는 것은 이 죄악들이 결코
다윗의 죄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죄는 또다른 죄를 낫게 하고 또 그 죄는 대를 이어서 이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일들은 다윗의 죄값이 치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죄에 대해 구속함을 받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 모든 죄에 대한 근본적인 값은 이미 예수님께서 치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우리가 마음대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 됐지만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며 또 죄는 더큰 죄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 스스로를 경계하며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나와 함께 하신 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죄가
내 주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모양으로도 모든 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9-15
-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삼하 13:21)
아들 암논의 엄청난 범죄 앞에 다윗이 보인 태도는
심히 노한 것뿐이었다.
그는 왕이자, 아버지로서 최소한 아들을 크게 질책하거나
징계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이 일은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 악에 대해
단호하지 않은 태도는 결국 더 큰 죄악을
낳게 됨을 깨닫게 된다.
나의 생활 중에도 ‘이정도 쯤이야’하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죄악된 모습들이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러한 나의 태도는
나의 죄를 점점 더 증폭시켜서
하나씩 하나씩 합리화하며 타협하는 결과를 냈다.
죄는 연속되며 증폭되는 특징이 있다.
내가 매 순간 나를 미혹하는 죄 앞에서
단호한 태도,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죄가 나를 채우게 되고,
그럼에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이정도 쯤이야
합리화하며 타협하는 삶을 살지 모른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보여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죄가 싹틀 여지를 주지 않는 나의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