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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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토) 삼하14장_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진리에 이끌려야 한다
- 느헤미야강
- 201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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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건
다윗은 압살롬이 암몬 다음의 차자이고
왕위 계승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처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압살롬이 그술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아들을 향한 아버지 다윗의 마음은 애절해졌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마음을 읽고,
왕국을 위한 마음에 꾀를 내어 한 여인을 사주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압살롬을 불러오게 합니다.
요압의 사주를 받은 드고아의 여인은
많은 성경학자들에 의해서 지혜롭기 보다는
간교한 여인으로 번역되어야 하며
심지어 일종의 점장이와 같아서 마귀적으로
선지자 나단을 모방한 것이라고까지 평가받기도 합니다(Arthur Pink).
여인은 요압이 꾸며준 이야기대로 다윗에게 말하고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아들을
사면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됩니다(11).
그리고는 이 일이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라는 것을 말하면서
압살롬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한 모든 이야기는 사실상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녀의 이야기 속의 두 아들은
우발적으로 싸우다가 하나가 죽게 되었다면
압살롬은 계획적인 살인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살인한 아들은
온 족속이 내어놓아 죽게 하라고 요구했지만,
압살롬은 죄과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서
스스로 도망친 경우입니다.
그녀의 남은 아들은 유일한 상속자였지만,
다윗은 압살롬 외에 다른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지만(14),
압살롬은 회개했다는 증거도 없고
희생 제사를 드리지도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은혜가 적용될 수 없다는 점도 간과합니다.
결국 이 여인은 요압의 말로 다윗을 속이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이 시도는 겉으로는
용서와 화해의 시도로 보일지라도
사실은 거짓된 마귀의 계략이었습니다.
회개 없이 죄용서는 없지만,
다윗은 다시 한 번 대충 넘어가는 유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압살롬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불러들이고도
그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압살롬으로 하여금
반역의 길을 걷게 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압살롬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외적으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의 내면의 지혜나 경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두 해가 지나도록 아버지 다윗을 보지 못한 압살롬은
결국 자기를 피하는 요압으로 인하여
아버지 다윗이 자기를 부르도록 강요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압살롬을 불렀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춤으로써 화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화해였는가?
우리는 그 다음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다윗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본문은 감동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탕자는 뉘우치고 회개하는 아들이었다면 압살롬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이 아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왕인 다윗은 사형자인 압살롬을 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을 향한 사적인 감정에 이끌려,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습니다.
겉으로는 용서하는 것 같고,
모든 화해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다윗의 실수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며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본문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적 감정이 아니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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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9-18
-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삼하14장30절)"
다윗은 요압으로 말미암아 압살롬을 다시 데려오게 하지만 그를 만나지는 않았다.
다시 돌아온 압살롬은 다윗의 얼굴을 볼 수 없으므로 요압을 청하여 만남을 주선하게
하고자 했으나 요압은 그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에 압살롬은 요압의 밭에 일부러 불을 내어 요압이 오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왕으로 만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 과정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결코 바른 방법이 아니면 그 결과가 좋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갈 때도 그 동기와 과정이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주장하면서 그 과정에 하나님의 뜻과 다른 일들을 행하는 것은
결코 주님이 바라시는 일은 아닐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길 원한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길 원한다.
하나님의 작은 뜻 하나를 이루어 가는 삶을 통해 어느새 돌아보면 내 삶 속에 주님의
큰 일들이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압살롬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의 형에게 복수를 하는 모습도 그러했고 또 요압에게 행했던 일 또한 그러하다.
한 번 잘 못된 길로 들어서면 그 길에서 나오기 어려운 것을 보게 된다.
주님의 뜻에서 어긋나지 않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나 주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뜻을 위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한다. -
- john 18-09-18
-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삼하 14:25)
다윗은 형제를 살해하고 피해있던 압살롬을 그리워 했다.
모든 사람들의 그의 탁월한 외적 모습을 보고 그를 사랑했으니
아버지인 다윗의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크나큰 잘못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부자 간의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종의 ‘정’같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는 다윗의 그릇된 자녀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의 아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나 역시도 그러한 외적인 요소에 취해
아들의 심령이나 삶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결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외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와
사람에 대한 그릇된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볼 때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
나또한 외적인 요소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를
결단하며,
다른 사람들,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정에 취해 해야 할 말, 가르쳐야 할 길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전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분별력과 담대함을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