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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월) 삼하15장_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 느헤미야강
  •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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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해]


평안할 때에 우리의 믿음과 이성이 말해주는 것이

우리 믿음의 실체가 아니라

환난이 올 때 우리 안에서 나오는 태도가

우리의 믿음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찾아오는 환난은

결코 저주가 아니라 변장한 은혜의 수단일 뿐입니다.


압살롬의 반역(1~12):

압살롬은 아버지와 화해한 후 4년 동안(7)

치밀하게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고(6),

아버지 다윗에 대하여 반역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헤브론에서 서원을 이행할 일이 있다고

다윗을 속인 후,

200명의 예루살렘 유력자들을 속여 헤브론으로 가서

나팔을 불고 왕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압살롬이 한 것이 바로 당짓는 일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자기 손으로 앞당기고 싶었습니다.

 

다윗의 피난(13~37):

다윗이 예루살렘에서의 전쟁을 피하고 도망을 선택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슬픈 행렬이었고

다윗의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단순히 아들의 반란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를 당하고 있는 것인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삼하12:10~11).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12;10-12)

 

그러나 아직도 끝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길 때에도

이렇게 울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다윗은

다시 죄를 기억하고 울었습니다(30).

이 때 다윗의 마음을 기록한 것이 시38:4입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다윗의 이방인 추종자들(18~22):

블렛과 그렛 사람들(18)은 다 이방인 용병들이었으나

그들은 이 위기의 때에도 신실하게 다윗을 따랐습니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600명의 군대 역시

다윗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압살롬에게 빼앗겼으나

다윗은 오히려 이방 용병들의 충성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 다윗(24~26):

언약궤를 가지고 나와 다윗의 일행이

기드론 시내를 다 건너기까지 제사를 드리는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언약궤를 가지고 돌아가라고 명합니다.

그는 그토록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를 원했던

그 언약궤를 자기 왕권의 정통성의 수단으로

삼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25~26).


후새(31~37):

자신의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모략이 어리석게 되도록 부탁하고

후새를 만납니다.

다윗을 따르려는 후새를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보내며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는 사명을 줍니다.

결국 다윗의 기도(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해달라는, 31)

후새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17).

 

묵상과 적용말씀입니다.

 

1. 

환난은 다윗 영혼에 유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윗은 겸허하게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두 말없이 피난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26).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나빠보여도

그분의 뜻에 온전한 받아들임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윗에게 찾아온 인생의 가장 비참한 사건은

오히려 그 영혼에 유익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다윗은 밧세와 범죄 이후,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그술에 3,

예루살렘에 돌아와 아버지와 대면하지 않고 보낸 2,

그리고 화해한 후 4년 거의 10여 년간

영적으로 그리 충만한 상태를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2.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삼하15:8)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진짜 목적을 감추고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시행하는 일입니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일의 끝은 패망(敗亡)입니다.

사람이나 하나님이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킵니다.

백성과 왕실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틈을 비집고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삽니다.

왕의 실정(失政)을 비난하고

자신이 왕이 될만한 인품이란 것을 보여 줍니다.

백성들이 절하기 전에 먼저 가서 입을 맞추고

억울한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훌륭한 외모에다 겸손함을 갖춘 압살롬에게서

우매한 백성들은

또 다른 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준비한 후 그는 헤브론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왕이 된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이 쿠데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목적이나 과정이 다 나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순한 동기와 과정으로 엮어진 일의 끝을

좋게 하신 예가 결코 없습니다.

헤브론으로 내려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다윗왕을 향해서는

서원한 제사를 드리러 간다고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최고의 왕입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으므로 기뻐하며

아들을 축복하기까지 합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왕되는 일에 다윗의 신앙을 이용했습니다.

또한 즉위 식전행사로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을 높이는 일에 하나님까지 사용했습니다.

제사에 의식(儀式)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빠져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지 이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할 도구가 아닙니다.

신앙은 본받아야 할 뿐, 캐내어 이용할 약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용당하시지 않고

자녀들을 이용하시지도 않습니다.

사랑하실 뿐입니다.

 

더 이상 이용하는 일은 중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형상 따라 지음받은 자 모두 다.

 

3.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삼하15:21)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어려운 때가 닥쳤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그 세력이 커지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납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다윗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때였습니다.

광야로 나가 감람산 길로 접어들어서는

다윗과 모든 백성이 맨발로 울며 올라갔습니다.

거기엔 권위도 남아있지 않고 재기할 것 같지도 않은

초라하고 무능한 전직(前職) 왕의 처량함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스라엘은 계속될 것입니다.

다윗은 무슨 힘으로 이때를 견뎌냈는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느끼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할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잇대는 가드 사람으로

이스라엘에 망명한 왕실 수비대의 대장이었습니다.

휘하에 육백의 정예군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세력과도 싸워볼만한 힘이 있었지만 다윗을 따라갑니다.

다윗은 그들이 압살롬 밑에서도 요긴하게 등용될 것을 알고

새 왕을 모실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잇대는 다윗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것은 힘이 있지만

힘을 정의의 편에 쓰겠다는 신뢰의 표시였습니다.

 

캄캄한 절망의 계곡에서

잇대라는 한 인간에게 받은 한 번의 사랑은

스쳐 지나간 것 같지만

그 흔적은 오롯이 남아

다윗에게 견디고 부여잡을 힘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힘들 때 진하게 사랑해 줄 그 한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반대로 내가 그 한 사람이 되어 절망의 터널에서 구원하도록,

쏟아 부을 사랑의 대상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도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은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꼭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단 한 사람의 사랑에도 살기엔 넉넉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 이형원전도사 18-09-18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대로 내게 해하시옵소서 하리라(삼하15장26절)"

      압살롬은 4년간 철저한 계획 속에서 반역을 준비했고 때가되지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많은 백성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옮겨 갔고 다윗은 그 성읍에서 급히
      도망갈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알고 마음에 괴로움이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생기는 일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계속해서 지키는 것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언약궤를 메고 나온 사독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자신이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확신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26절의 고백이 이어진다. 혹시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좋으신 뜻대로 자신에게 역사하길 고백한다.

      다윗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기에 결국 그의 왕권은 회복되어 질 수 있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처참한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자신에게
      행하시기를 구하는 모습은 진정 믿음의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많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 불평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죄악을 깨닫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항상 먼저 주님의 뜻을 살펴보는 삶을 살길 원한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라도 혹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이 이어질 때라도
      그 상황에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님을 바라보기 원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제게 행하소서 고백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john 18-09-18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삼하 15:13)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왕이 되고자하는 야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서 자신의 왕좌에 오를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계획을 세우며 자신의 비상한 계획을
      스스로 칭찬하며 대견해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일하심을
      거부하는 대단히 교만하고 악한 시도였다.

      때때로 나는 나의 열심이나 나의 욕심이 앞선 나머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방법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가 있다.
      심지어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에도. 
      그러면서도 나의 열심을 스스로 칭찬한다.
      하지만 압살롬의 이러한 인간적인 방법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빼앗았고
      또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발생시켰던 것과 같이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들은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한계들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좋은 일인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묵상하며
      오늘 나에게 허락하신 만큼, 허락하신 방법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