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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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화) 삼하16장_다시 광야로
- 느헤미야강
- 2018-09-18
- 497 회
- 2 건
다윗의 일생을 보면 다윗이 왕궁에 있었던 날도 오래 되었지만
야인으로서 광야생활을 한 시간도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크게 보면 다윗은 광야생활을 두 차례 하게 됩니다.
한번은 사울의 칼을 피해서 광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는 꿈이 있었고 젊은 시절이어서 견딜만했습니다.
그와 함께 한 젊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60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사울의 칼을 피해서 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곳에서의 칠년 반의 기다림을 거쳐서
통일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했습니다.
하는 것 마다 잘되고 가는 곳 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열강들을
그의 칼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점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와의 사건 이후에 다윗은 급속도로 쇠락해갔습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 요압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이
다윗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압살롬의 사건 이후에 그는 압살롬을
징계하지도 않았고 품지도 않습니다.
징계와 사랑 두 가지를 다 놓치게 되자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배신하게 됩니다.
배신이 지나쳐서 왕위를 찬탈하고
다윗은 다시 두 번째 광야생활로 나가게 됩니다.
두 번째 광야생활로 떠나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두 번째 광야로 나가면서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납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그는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광야로 몰아가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은 므비보셋의 종 시바였습니다.
시바가 떠나는 다윗을 위하여
무언가를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1절)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사랑하는 친구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므비보셋을 거두어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게 해주고
종도 붙여주고 할아버지 사울이 가지고 있었던
땅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은 왕이 광야로 나갔는데
나와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종이 나왔습니다.
다윗은 의아했습니다.
“너의 주인 므비보셋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시바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3절)
다윗이 이제 이렇게 되어서 쫓겨 나가니까
므비보셋이 드디어 내 아버지의 나라를
되찾는 날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므비보셋의 종이 그의 주인을 모함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던 다윗은
화가 나고 서운했을 것입니다.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므비보셋에게 새로운 열어 주었는데
나에게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다윗은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 세속적이고 거짓이 가득한 시바의 말을
그대로 믿은 다윗은 그에게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땅의 소유권을 그에게 넘겨줍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인간을 향한 세속적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나타나 다윗을 욕하며 저주합니다.
그는 시므이라는 사람입니다.
몰락한 사울왕가의 먼 친척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을 저주하며 심지어 돌팔매질까지 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호위하던 아비새가 분해서
그의 목을 베어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시므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책망하는 것으로 듣습니다(10,11절).
교만의 정점에 서 있고 목자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들의 잘못을 징계하지도 않고
품어주지도 않는 자신을 시므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책망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유유히 하나님이 허락하신
광야의 길로 나서고 있습니다.
인(人)의 장막(帳幕)에 둘러 싸여 있었던 다윗이었습니다.
물질에 둘러싸여 있었던 다윗이었습니다.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목자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해서
자기의 아내로 삼았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용서해주셨는데
그 용서와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아들의 문제를 방치했던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다시 광야로 몰아가십니다.
그는 광야로 몰려가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몰아가시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매일같이 자발적으로라도
매일의 광야를 경험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주신 작은 성공이
영원한 것인 줄 알고 그것만 붙들고 물질의 장막,
사람의 장막에 머물러 있는 오류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오래지 못해서 무너질 것이고
다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내몰아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하신 것을 깨닫고 붙잡는
묵상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만 합니다.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광야에 서기를 원합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통독묵상 하나 더.
아무리 믿을만하다고 해도
제3자에 대한 평가를 들을 때
그것으로 그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원리만 지켜져도
얼마나 복된 관계들이 형성되어가겠는가?
관계를 깨뜨리기 쉬운 요소는
바로 이런 부주의한 요소들입니다.
다윗은 거짓된 친구 시바의 말을 곧이 들어
므비보셋을 판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부당한 일을 경험하거나 부당한 비난을 받는 일은
생각처럼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비난은 절대로 최종적인 판단이 아님을,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이나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부분도 있습니다.
개인의 경건이야말로 이런 사악한 분노와
그것의 무서운 결과—그에게 악으로 갚게 되는—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해독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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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9-19
-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삼하 16:4)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던 다윗에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찾아왔다.
그는 다윗에게 자신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했고,
그로인해 다윗은 므비보셋의 소유를 그에게 넘겨준다.
훗날 이것이 거짓으로 밝혀지지만
어째든 다윗의 이러한 처사가 지혜롭지 못했던 행동임을 생각하게 된다.
므비보셋의 평상시 행동이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행동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정말 다윗이 맞는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다윗의 상황이 어려운 상황임에는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상당히 경솔해 보인다.
오늘 본문을 통해 나에게도 있는 다윗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 내가 보고 들은 것보다
제 3자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할 때가 많고,
당황스럽고 다급한 상황에서는
전후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행동하는 모습들,
아무리 백번을 잘 해도 한 번만 실수하면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보다는
실수나 문제만을 꼬집어 이야기했던 모습들까지.
성숙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이
나에게도 있음을 돌아본다.
오늘 말씀을 마주하며 무슨 일에든지
어떤 다급한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든지
늘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처해야함을 기억하며,
섣불리 다른 사람들에 대해 시비를 가지 않는
더욱 성숙하고 진중한, 또한 분별력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9-19
-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삼하16장12절)"
다윗은 때로 죄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하여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겸손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에도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울의 친족 중 한 사람이었던 시므이가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저주하며 돌을 던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비새가 그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자 했으나 다윗은 그를 말리면서
그가 나를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 저주 때문에 선하게 자신에게 갚으실
것을 기대한다고 이야기 하게 된다.
혹시 자신에게 억욱함이 있고 시므이의 저주가 합당치 않다고 생각된다 해도
자신이 그를 죽임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믿음이 그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먼저 나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앞서 행할 때도 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이 나에게 있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면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인내함으로 기다릴 수 있는
믿음 또한 있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내 삶에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 질 수 있기를
그럼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