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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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금) 삼하19장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 느헤미야강
- 2018-09-21
- 522 회
- 2 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대하여
요압의 비난을 받은 다윗은 다시 일어납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는 변론이 뜨겁게 일어났습니다.
다시 다윗 왕을 모셔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유다 장로들로 하여금 왕의 귀환을 준비할 것을
종용하게 하고 압살롬에게 붙었던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는 군장을 삼겠다는 약속을 전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정치적인 선택이었는데,
자기 지파인 유다의 장로들을 앞세운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결국은 다른 지파들과의 분쟁을 초래하게 되고
후일 왕국의 분열의 씨가 되기도 합니다.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는 것은
압살롬의 세력을 다시 끌어안기 위함과 함께
아들 압살롬을 죽인 요압에 대한
징계의 차원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윗의 마음은 요압에게서 완전히 떠났음을
그가 임종직전에 솔로몬에세 요압을 처리할 것을
부탁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하는 다윗에게
나아와 영접을 한 사람들이 소개습니다.
먼저 피신길에 있는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입니다.
그는 베냐민 사람들과 함께 먼저 다윗에게 나아왔습니다.
시므이는 그 사건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고
아비새는 다시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귀환길에
개인적 복수를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두번째로 다윗을 맞은 인물은 므비보셋입니다.
그는 다윗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으나
종 시바에게 속고 중상모략까지 당한 처지였습니다(삼상16:1~4).
그래서 므비보셋은 다윗이 도피하였던 기간 동안
수염을 깍지 않고 옷을 빨지 않음으로
고생을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 시바의 중상모략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믿고 시바에게 주어버린 므비보셋의 재산을
이제는 다시 절반을 나누라고 명합니다.
세번째 인물은 다윗이 마하나임에 있을 때
그와 그의 군대를 공궤한 거부 바르실래입니다.
80세의 나이를 이유로 다윗이 함께 가자는 것을
정중히 사절한 바르실래는
대신 아들 김함을 다윗에게로 보냅니다.
후일 다윗은 죽을 때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소중히 대하라고 유언합니다(왕상2:7).
왕의 귀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나서서 다윗 왕의 귀환을 적극 담당하여
요단 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에게 나아와서 거세게 항의합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대가 없이
다윗 왕의 지친으로써 행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였는데,
결국 이런 분쟁은 남북 분열이라는
불행의 씨앗이 되게 됩니다.
이것은 다윗이 유다 지파를
우대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일입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영적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온통 정치적 책략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계속 다윗을 당신의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이제는 다 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실 날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빚어져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비록 다윗의 삶속에서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하지만
다윗에게서 발견하는 은혜와 도전의 한자락을 나눕니다.
큰일을 겪고 나면 사람의 그릇이 커지고 넓어져서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피난길에서 돌아온 다윗은 이전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 있었습니다.
광야는 이렇게 다윗에게 아주 유용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첫 번째 광야에서
다윗은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다윗은
첫 번째 광야에서 사울을 두 번이나 용서하고 살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광야로 나가서 다윗은
다시 하나님과 만나고 시므이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이
오히려 초연해진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독대하는
광야에서의 영성은 이 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만나 기도하는 시간,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을 가지고 독대하는 시간들은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만들어줍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시므이 같은 사람,
의심을 하게 하는 므비보셋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고
따지지 않고 용서하고 덮어주는
큰 그릇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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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9-21
-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삼하19장23절)"
다윗은 압살롬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이제 다시 왕으로써의 복귀를 준비한다.
그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시므이가 다윗을 영접하게 된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을 떠나 피난길에 오를 때 다윗을 저주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자에 대하여 아비새는 그를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다윗에게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왕을 저주했으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고 그를 살려주게 된다.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자신을 저주했던 인물이 시므이였다.
하지만 그런 시므이를 다윗은 별다른 책망도 하지 않고 그를 죽이지 않을 것임을
맹세까지 하며 약속하는 말씀을 보게 된다.
다윗은 개인적인 원한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그릇이 큰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제 더 넓은 품을 갖게 된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어려움이 그의 죄악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 어려움은 또한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이러한 넉넉한 마음이 있기를 원한다. 지금 당장 나의 감정과 상황에
사로잡혀 그것에 연연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한다.
내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에 대하여 복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나를 비방하는 자
까지 품으며 사랑으로 그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9-22
-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삼하 19:20)
다윗의 실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심지어 피난 길에 있는 다윗을 저주하기까지 했던 시므이가
환궁하는 다윗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차라리 조용히 숨어서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어떻게 보면 뻔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시므이의 모습이지만
다윗은 시므이로부터 저주와 멸시의 말을
들은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며 그에게 해 입히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다윗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넓은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이렇게 큰 아량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을 주관하시며 다듬어 가셨던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때로는 승리를 통해, 때로는 어려움을 통해,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 그를 더욱 견고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셨던 하나님의 섭리가
그로하여금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치리해 나갈
인간 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했던 것이다.
나도 다윗과 같이 넓은 마음 갖게 되기를 자주 꿈꾸지만
나는 나에게 찾아오는 단련의 과정은 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를 단련하심으로 정금과 같이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쉬지 않고 나타난다.
이 때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받아
그 훈련의 시간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나를 내어드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빚어질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을 감당함으로,
또한 훈련의 시간들을 감내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날마다 새롭게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