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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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목) 삼하24장_은혜임을 아는 자
- 느헤미야강
- 2018-09-27
- 507 회
- 2 건
다윗이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고
숫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골리앗과 싸우던
어린 시절부터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년에,
다윗은 자기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구조사를 한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떤 동기에서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요압이 바른 소리를 하지만, 다윗은 결심을 굳히고 실행하라고 명령합니다.
9개월 20일만에 인구조사가 끝났는데, 이후에야 다윗은 자기 죄를 깨닫게 됩니다.
이때 선견자 갓이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죄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세 가지로 하나님의 형벌이 주어졌는데,
7년 기근과 3개월 대적에게 쫓기는 일 그리고 3일의 온역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느 것 하나를 선택했다기 보다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에 빠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온역을 전국에 보내셨고 무려 7만명이나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사자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형벌을 그치라 명하시고 온역이 그친 줄을 알지 못하는 다윗은
백성들이 죽어가는 괴로움으로 인하여 자기와 자기 집을 쳐주시기를 구합니다.
갓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온역이 그쳤음을 전해주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을 것을 명합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에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번제를 드리기를 원하지만,
아라우나는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고
그것을 그냥 드리겠노라고 하지만,
다윗은 은 오십 세겔로 마당과 소를 사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 때로부터 다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장소는
바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대하3:1).
다윗은 이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굳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가격을 비용을 지불하여
매입하려고 한 것입니다.
묵상1.
다윗의 삶을 멀리서 보면 멋지고 흠이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헛점 투성이에 죄의 얼룩이 가득합니다.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도 그것을 증명해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사람은 그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가진 유한한 힘을 측정하는 일로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오늘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성공도, 실패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실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묵상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내 마음이 어떠한지, 내 마음이 상해있는지,
내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갈급한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한편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신다는 말은 두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악할 때도 있고,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을 때도 있고
형제와 이웃을 향한 시기와 원망, 미움으로 넘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숨기고
그렇지 않은 척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있게 한 동기, 과정, 내용,
그 일을 진행하는 마음의 변화까지 읽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시작했고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진행했느냐 하는 과정과 동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면서
어떤 동기로 살아가느냐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다 옳아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행하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목자의 정체성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백성의 수와 칼을 의지하겠다는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벌을 내리신 것처럼
오늘 시작하는 이 마음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순전한 마음, 깨끗한 마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시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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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9-29
-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24장3절)"
다윗은 다시 한 번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다윗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요압은 그 일이 잘 못된 일이고 왕이 기뻐할
일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그 마음에 인구조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요압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그 일을 감행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을 다 하고 나서야 그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일을 통해 이스라엘에는 전염병이 돌게 되고 칠만명이 죽는 참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내 마음에 죄악의 유혹이 찾아올 때 혹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내 마음 속에 계획하게 될 때가 있다.
이 때 우리의 마음에 완고해 지면 주변의 어떠한 경고와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혹은 들었지만 그 음성을 애써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일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음성이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내 마음에 그리고 주위의 상황과 사람을 통해 혹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 다만 내가 귀를 열고 있는가 혹은 닫고 있는가에 따라 그 음성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음성을 무시하기도 한다.
언제나 믿음의 귀를 활짝 열고 주님의 뜻과 음성을 분멸하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 음성은 나를 옳바른 길로 인도해 줄 것이며 죄악된 자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가 가는 삶을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
- john 18-09-29
-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삼하 24:10)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큰 왕국을 이뤘던 다윗은
자신의 힘을 확인해 보고자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망각했던 무지함과
하나님보다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교만함이 낳은
죄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한 인간 다윗의 모습이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엄청난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삶에는 나약하고 죄된 모습들도 많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셨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순전한 마음 때문이었고,
또한 그럼에도 자주 실패하고 넘어졌던 것은
이 마음 외에 다른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다윗뿐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 외에
다른 어떤 마음이 들어오는 것을 방치하면
그 결과는 언제나 죄와 실패뿐임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다.
나 역시도 내 마음 가운데 주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이 있을 때만이
나에게서 아름답고 선한 열매가 맺혀졌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이 희석되는 순간
나는 늘 넘어지고 실패한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뿐임을,
그 은혜를 사모함으로 간절히 구하는 길뿐임을 생각한다.
매일의 삶 가운데 은혜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분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