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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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수) 주권신앙,참된회개

  • 느헤미야강
  • 2018-08-22
  • 460 회
  • 2 건

삼상24장 주권 신앙과 참된 회개가 있는가


쫓기는 다윗은 엔게디 황무지의 한 굴 깊은 곳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숨었고,

사울은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를 수색,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마침 다윗이 숨어있는 그 굴에서

휴식과 오수를 취하기 위해 들어왔고

다윗의 부하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잠들어있는 사울의 옷자락을 베고 돌아섭니다.

죄책감이 될 수도 없을만한 일이었지만,

다윗은 이 일로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의 예민한 영적 감각을 보십시오!

그리고 자기 부하들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사람이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바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하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실로 그 마음에 찔림을 가지고 한 고백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다윗은 지금 이 고단한 쫓김은

사울과의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훈련일 뿐입니다.

그 의미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다윗은 굴에서 나간 사울의 뒤에서 소리쳐 말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아버지라 칭하며

사울이 잠 든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사울과 자신 사이의 모든 일을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하나님이 해결하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에 비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사울은 소리 높여 울면서 다윗의 의로움을 증거했습니다.

사울은 놀랍게도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 말은 구구절절이 옳습니다.

 

그가 정신이 돌아왔을까요?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는 진심이었을까요?

그러나 성경이 보는 관점은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사울은 표면적으로는 감정적으로

그리고 진실하게 또 바르게 반응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경은 그의 중심을 보면서,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회개는 감정적이기만 하면 참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회개는 옳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중심에서 나와야 합니다.

겉에서 안으로 회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사울의 이후 행위는 그의 뉘우침이

회개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중심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을

얼마나 존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다윗의 삶의 모든 국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의 신앙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는 삶은

다윗이 평생 보여준 놀라운 믿음의 특징입니다.

 

본문이 사울을 통해서 보여주는 부정적 교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감정적 회개와 지적 깨달음으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중심의 변화는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 믿음,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참된 회개가 나의 삶 속에 있는지요?

    • 이형원전도사 18-08-23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24:6)"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혹은 합당화 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행한 일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고 때로는 틀리다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변명하기 위한 방법이 합리화 이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 하려고 할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을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뜻을 핑계로 사용한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는 않는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사울을 죽인다고 해서
      그 누구도 다윗을 욕하거나 혹은 죄를 지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또한 다윗은 사울을 죽이면 더 이상 도망자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될 뿐 더라 이제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우신 것 처럼
      왕으로써의 삶을 이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보면 그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고 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한
      상황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어떤 상황과 합리화 보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길 원했던 것 같다.
      그는 그 모든 상황 속에 사울을 죽이는 것이 옳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그 찔림은 곧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를 자신이 죽이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나온 찔림이었다. 그는 자신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 찔리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일을
      합리화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음에 찔림이 있고 양심에 거리낌이 있다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시는데 우리가 마음에 찔림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가 않는다.
      마음에 찔림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고 이야기 하는 것은
      자리 합리화 밖에 되지 않음을 다윗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살피길 원한다.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길 원한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또 마음에 찔림이 있을 때는 그 것을 멈출 수 있는 믿음도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의 삶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이 나타내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john 18-08-23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상 24:5)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옷자락을 베어 온것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양심에 가책을 느낀 다윗.
      그의 겸손함과 온유함이 잘 드러나는 말씀이다.
      가히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한다 하면서도
      순간순간 들어오는 죄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고
      결국은 내 뜻대로만 행하기를 원하는 내 모습과
      어쩜 이리도 대조되는 모습인지.
      말과 생각뿐인 신앙에서 삶 가운데 열매 맺어지는 신앙이 되기를
      다시 한 번 사모하며 결단하게 된다.

      자신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런 다윗의 모습이 아닐까?
      나에게 잘 해주고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조건적인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도, 악한사람 조차도 잠깐이나마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피해를 주는 사람도
      사랑하며 존중하는 삶은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에수님의 사람들만이 누리고 경험하는
      특권이자 은혜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이러한 은혜의 주인공이
      내가 되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고,
      순간순간 들어오는 미움, 정죄, 비난의 마음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기를 결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