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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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월) 삼하3장_인간의 술수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다
- 느헤미야강
- 2018-09-03
- 428 회
- 2 건
1
사무엘하 3장은 다윗가문의 흥왕과
사울 가문의 쇠퇴가 대조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다윗의 집은 강해지고
사울의 집(이스보셋)은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이 무렵 다윗은 정략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이런 다윗의 가정사에 대한 기사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5).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의 결혼은 특별히 정략결혼에 해당합니다.
성경 기자가 다윗의 가정사를 여기에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고 그의 세력이 점점 강하여지자
다윗이 보여주는 행동은 영적인 느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다윗은 도망다녀야 하는 몸이 아닙니다.
그를 추격하는 사울도 이제는 죽었습니다.
그는 비록 남유다만의 왕으로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곧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고,
힘이 생기면서 다윗이 보여주는 태도는
여느 죄인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여러 부인을 거느린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연합하는
하나님의 결혼 원칙을 양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결혼 원칙은 여전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다윗도 똑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요?
절박한 상황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고,
물질이 풍부해지고, 힘이 생기면
대부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일관성있게 증거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이스보셋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사울의 집안에도 문제가 터졌는데,
아브넬이 사울의 첩인 리스바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보셋은 이 일을 문제삼아 아브넬을 비난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아브넬은 다윗의 집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아브넬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다윗과 타협을 시도하였는데,
다윗은 이때 자기의 첫번째 아내 미갈을 돌려보낼 것을
그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윗은 사울의 가문에
여전히 호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갈은 다시 결혼하였는데,
아브넬은 이 둘을 억지로 갈라 미갈을 다윗에게 보냈고,
이어 이스라엘 장로들을 설득하여
다윗을 왕 삼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총회를 소집하는 것을
의논하기 위해서 헤브론의 다윗에게로 향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선대하였고
더 이상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되는
과정을 밟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대장관 요압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자기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에
그는 다윗 몰래 아브넬을 다시 헤브론으로 속여 불러서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분개하여 요압의 집을 저주하였고,
이 일이 자기와 상관없는 일임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을 애도할 것을 백성들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이어 다시 한 번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으로 인하여 애가를 지었습니다.
백성들은 다윗의 이런 마음을 인하여
다윗을 신뢰할 수 있었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3
사무엘하 3장은 정치와 음모로 가득찬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정치와 음모와 책략
그리고 죄악된 본성과 그 행위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온전하게
그리고 조금도 빈틈없이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자기 힘으로 이루기 위해서
피흘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성공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음모와
배신과 죄악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
요압과 다윗의 태도가 두드러지게 대조됩니다.
요압은 개인적인 원수 갚음에 사로잡혀서
피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할 수만 있으면 피흘리기를 그치고
평화롭게 모두를 품고 나라를 세워가고자 했습니다.
다윗이야말로 원수를 맺으려면
얼마나 많은 원수를 맺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에서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요압은 결국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의 신뢰를 잃게 되었고,
후일 다윗은 임종하면서 솔로몬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요압을 칠 것을 명하였습니다.
다윗이 원수 갚는 일과 피흘리는 일을 피함으로써 얻은 것은
백성들의 신뢰와 사랑이었습니다.
망가지지 않은 마음, 순전한 마음은
하나님께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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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18-09-04
-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삼하 3:31)
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브넬을 속여 살해한 요압,
자신을 수차례나 죽이려했던 사울의 집안에 선대했던 다윗.
두 사람의 달라도 너무 다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말씀이다.
둘 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한 사람은 인간적인 복수심에 눈이 멀어 살인도 서슴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
원수의 딸이자, 자신을 떠나 재가한 옛 여인까지도 받아들였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라고해서,
또 하나님 백성들 그룹에 속해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관점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로 살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 되갚아 주고 싶을 때
정죄하는 마음이 들고 악한 생각을 하게 될 때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대처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들로 행하는 나의 모습은 요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의 일원이라고 해서, 내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심지어 전하는 자라고 해서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나에게 인간적인 관점, 방법, 태도를 심어주며
나로 하여금 악한 모습으로 살게 한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악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내 주관자가 되심을 고백한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결단한다. -
- 이형원전도사 18-09-05
- "이 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아니라(삼하3:37)"
다윗은 아브넬을 죽이지 않았지만 그가 죽인 것이라
오해 받기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아브넬을 죽인 요압에게 저주를
하고 또 진심으로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진실된 모습을 통해 백성들은 아브넬을 죽인 것이
다윗이 한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이것은 곧 온 백성의
기쁨이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간혹 내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고초를 겪을 수 도 있고 오해를 불러
일으 킬 수도 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진실된 모습이 필요하다.
진실된 모습으로 우리의 일을 감당해 나갈 때 어느새 그러한 오해는
풀리고 오히려 그러한 일들이 나에게 유익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억울함은 사람이 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내가 당장 억울함을 풀려고 인간의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어나니기 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진실함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