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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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삼하4장_초지일관
- 느헤미야강
- 2018-09-04
- 542 회
- 2 건
삼하4장 초지일관
1.
삼하4장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스보셋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스보셋이 볼 때에 아무리 못된 장군이었지만
자기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보셋에게는 아브넬 외에도
베냐민 지파 림몬의 두 아들인
바아나와 레갑이라는 장군이 있었지만,
이들은 결국 이스보셋을 배신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가서 투항하였습니다.
사울의 죽음의 소식을
다윗에게 알려주었던 아말렉 소년과 같이,
이들도 보상을 얻을 것을 기대했었겠지만,
다윗은 이스보셋을 의인에 비기며
그를 죽여 피흘린 죄를 인하여 그들을 처형하고
이스보셋을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2. 묵상과 도전
처음과 끝이 동일한 초지일관.
누구나 해보고 싶은 소망이나
상황이 급변하고
처음 가졌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되면
상황논리를 내세워 내 뜻을 버리기도 합니다.
다윗의 초지일관.
다윗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목자로 부르셨고,
사무엘이 집으로 왔을 때 목자로서
양떼를 치는 들판에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받은 훈련도 결국 목자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목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내 눈 앞의 양들을 돌보며 날마다 하나님께 묻는 자입니다
성실히 돌봐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600여명의 양 떼들을 데리고
광야를 거의 15년 가까이 전전했습니다.
혼자이면 숨기도 용이한데
6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늘 책임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목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두 명의 악인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비록 허수아비 왕이지만
이스라엘의 사울의 왕이었던 이스보셋을 죽였습니다.
기울어가고 있는 사울 왕가의 허수아비 왕을 죽이고
다윗에게 상을 얻기 원하는 두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보셋이었지만
실질적인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브넬이었습니다.
아브넬이 헤브론에 가서 죽었습니다.
그 소식이 이스라엘에 알려지자
열 한 지파는 큰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자 군대장관 이었던 두 사람이 이스보셋을 살해했습니다.
그들이 왕을 죽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 저물어가는 왕가에 우리가 몸담고 있다가
다윗이 쳐들어오면 우리도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왕을 먼저 죽이고 왕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갖다 주면
살 길을 얻을 것이라는 한 가지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지고 온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이 기뻐하며 받았을 리가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사울을 죽였다고 거짓말했던
아말렉 청년의 목을 다윗이 베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끝까지 초지일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자로 세우신 것을
기억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손대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몰락하는 사울 왕가를 다윗이 마음만 먹었더라면
군대를 일으켜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한 가지 의지만을 가지고 초지일관했던 다윗에게
그들은 번지수를 잘못 알고 찾아왔던 겁니다.
결국 이 두 사람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었던 다윗에게
결국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십니다.
다윗이 한 가지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목자의 정체성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한 가지 뜻을 품고
끝까지 유지하게 하는 초지일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 힘은 내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변하고 사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상황논리에 빠지고
쉽게 타락하고 퇴색되어 갑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람을 붙들어 가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영, 성령의 행하심입니다.
성령은 한번 우리를 붙드시면
끝까지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마음에 품으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면
우리도 강력한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번 주님을 만나면
지금까지지 지었던 죄의 권세를 한 번에 깨뜨립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도 싫어지는 것이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가운데서 상황이 변하고
의지가 약해지는 일이 있다면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자아가 약해져야 합니다.
나를 죽일 때 성령이 강해지고
내가 사라질 때 성령은 내 속에서 활동력을 얻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죽이고
성령에게 이끌림 받는 귀한 하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품었던 선한 의지를 끝까지 가지고 실천하며 살겠습니다.
성령의 의지를 따라살며 나의 자아를 매일 죽이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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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원전도사 18-09-05
-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삼하4장12절)"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세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을 죽이고 다윗에게 투항한다.
아마도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살길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들의 행위가 결코 바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들의 행동은 다윗에게는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통일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다윗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사울이 죽었을 때와 같이
그 일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서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를 계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의가 그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컸음을 느낀다.
우리는 보통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 상황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많은 관심과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일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 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기도한다. -
- john 18-09-05
-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삼하 4:11)
세상과 다른 관점, 다른 기준, 다른 가치관으로 샐았던 다윗의 모습은
오늘 나에게 큰 도전과 귀감이 된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많은 말과 행동 가운데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기준으로 삼는 나이지만
다윗은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자신의 원수를 갚아 준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만일 나라면 사실 복수하는 것이 께름칙한데
대신 해 줘서 고맙다고 여기며 은근히 고마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오히려 자신의 원수를 의인이라 칭하며
그를 죽인 사람들을 처형한다.
세상과는 다르게 사는 삶.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있었던 이유였으리라.
오늘도 여전히 나는 세상적 기준과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하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행할 바를 깨닫게 된다.
말과 행동에 앞서서, 선택과 결정에 앞서서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늘 고민하고 묵상하는 내가 되기로 결단한다.
